어린 새끼들이 자라서 날개짓을 익히고 마침내는 날개에 확실한 힘이 생겨 혼자 날 수 있게 되는 날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의 세계를 향해 날라가 버린다. 적막하게 텅빈 둥지만 남겨놓고.

인간의 가족생활도 비슷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성장하여 부모의 곁을 떠나고 난 가정을 영어에서는 '텅빈 새둥지'(empty nest)라는 표현을 쓴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은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 더욱 완성된 인간이 되어 돌아 오기 위한 희망 찬 헤어짐이다.

자식을 떼어 놓는 계기나 방법은 가정마다 다르다. 그러나 어느 부모나 처음으로 자식이 곁을 떠날때, 비록 그것이 한동네에 새살림을 내주는 경우라도,마음의 허전함과 집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부부가 함께 늙으며 둥지를 떠나는 자식을 배웅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래도 자신들의 공동작업 완성의 성취감 같은 기분좋은 후련함이 허전한 마음을 많이 달래주지만 혼자 된 부모가 자식을 길러 떠내 보낼때는 육신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느끼기 마련이다.

거의 십년 차이로 두 아이를 둔 우리 부부는 우리 가정이 연년생 아이들을 둔 집같이 갑자기 빈둥지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워낙에 나이 차가 많으니까 큰아이가 군대고 유학이고 다 마치고 와서 가까이 살게 되는 때나 되어야 작은 아이가 떠날 나이가 될테니까 참 가족계획을 제대로 한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 했다.

그러나 인간의 계획이란 예측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느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 었다. 큰아이조차 날개가 완전히 여물기도 전에 우리는 남편과 아버지를 한순간에 잃고 만 것이다.

가장을 잃고도 우리 가정이 버텨 설 수가 있을 것인가. 자식이란 부부가 같이 기르기로 하고 낳은 것이다. 어떻게 내가 혼자 아이들을 기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여자 혼자의 힘으로 자식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 낸 많은 사람들을 주위에서 보아 왔다. 나는 처음으로 그런 분들의 놀라운 능력에 진심으로 경의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은 해내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내가 혼자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남편은 늘 우리와 함께 있어 주었지만 당사자인 아이들이 스스로 내 짐을 나누어 져주는 것이었다. 그들이 아버지를 일찍 여윈것을 내가 가엽고 불쌍하게 여기듯 그들도 내가 남편을 일찍 잃은 것을 안쓰러워 하고 있었다.

첫아이를 일찍 둔 우리는 그 애와는 같이 자라 왔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애가 자식이라기보다는 형제나 동료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그 애는 동생에게 그때까지 해 온 큰 형 노릇에서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역할까지 떠맡았다.

그 후 우리 세식구는 더욱 가까워졌다. 저녁시간을 같이 보내는 날이 많았고 또 여행도 여러번 같이 떠났다. 철이 아닌 해변이나 산에 가서 이삼일씩 지내고 왔다. 여행이란 온종일, 며칠을 늘 같이 있게 되기 때문에 아무리 가족간에도 집에서 살때와는 다른 가까움을 발견하게 한다.

나는 남편을 잃고 난 후에야 자식들을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다. 그 동안 남들이 아이들이 아빠를 많이 닮았다다고 할 때는 무심하게 자식이니까 닮았겠지 하는 정도로 생각 했다. 그런데 남편이 곁에 없고나니 아이들에게서 너무나도 많은 남편의 모습이 내눈에도 띄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가까이 보면 볼 수록 더욱 그랬다. 모습뿐이 아니었다. 목소리며 특유한 몸짓, 심지어는 헌 구두의 모양새나 뒷축의 닳는 모양까지 똑같애서 밖에서 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이 받을 때라던지 무심히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에 들어설때 아이들의 벗어 놓은 신발을 보고 남편이 집에 돌아온 착각이 순간적으로 들어 가슴이 내려 앉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종교적인 의미의 영생이란 영혼의 얘기만이 아니고 육신의 모든 특징적인 요소가 자식으로 이어지는 가시적인 것인가. 생명이란 참으로 신비한 것이다.

더구나 하루가 다르게 한창 자라나는 작은 애에게서 너무나도 많은 남편의 모습을 보게되는 것은 경이로운 기쁨이며 동시에 견듸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어린 것에게 내가 어른에게나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 나이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잘못이나 전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작은 실수에도 온 신경을 곤두 세웠다. "너 애비없는 후레자식 소리 들을래..." 우리 모두에게 가장 아픈 말이 모르는 사이에 튀어 나와 우리를 찌를 때 나는 깜짝 놀래서 그애를 끌어 안고 울었다. 총을 맞은 짐승끼리도 서로 상처를 핥어주는데 왜 운명에게 강타 당한 우리가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 못할까. 아이를 잘 기르려는 어미의 욕심은 양쪽 모두에게 상처를 입힐 뿐이었다.

큰 아이가 유학을 계기로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나는 마음의 허전함은 고사하고 텅빈 집의 물리적인 공간이 무서워서라도 생활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년을 좀 넘게 학교를 휴직하고 풀블라이트 연구비를 받아 미국의 국회도서관에 가서 미루어 두었던 학위논문을 마쳤다. 전혀 다른 환경의 외국생활에서 나는 내 자신과 아이들의 실체와 관계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체류기간이 끝나갈 무렵 작은 아이가 자기는 혼자 미국에 남아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굳은 결심을 보였다. 겨우 중 2를 마친 나이었다. 나는 귀국 후 혼자 생활해야 할 일이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쩌면 이것이 그애를 자유롭게 자신의 주체성을 키울 수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혼자 있기가 겁이 나서, 외로워서 그 애를 옆에 두고 남편의 모습이라도 부뜰고 살려고 하는 것은 아이의 원만한 성장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 애는 그나름의 독립적인 자연인이지 아버지의 화신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어린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해 12월 한달을 우리 모자는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냈다. 미리 조사해 놓은 몇군데의 기숙학교들을 방문하고 입학허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가보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고속도로를 낯선 차를 끌고 지도 한장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도 한번도 길을 잃거나 헤매는 일이 없었다. 방향감각이 좀 무뎌서 늘 길을 잃고 남편에게 놀림을 받았던 나였었는데...

한번은 오전 10시 인터뷰를 약속해놓은 학교를 찾아 아침 일찍 떠나야 했다. 그 전날 비가 뿌리더니 밤에 기온이 급강하해서 운전할 일이 걱정이 되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부시게 활짝 갠 하늘에 칼날같이 추운 날씨였다.

우리는 그날 주위경관이 아름다운 뉴욕 북쪽의 헛친슨 파아크 웨이를 달리고 있었다. 길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이미 염화칼슘이 뿌려있었다. 햇살이 올라오자 눈앞의 경치는 가슴이 져리게 아름다웠다. 전날의 가랑비가 나무끝에 온통 얼어 붙어서 가로수 하나 하나가 거대한 크리스탈 조형물들이 조명을 받고 서있는 듯했다. 샛파란 하늘을 이고 투명한 나무들이 적나라하게 세세한 작은 가지 하나하나에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나는 넋이 빠져 어딜 가고 있는지 조차 잊고 있었다. 옆에서 애가 무슨말을 했을때도 건성으로 듣고 내얘기만 하였다. "얘, 승회야 네가 아무리 원하는 학교에 꼭 가지 못하게 되어도 엄마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여행을 하게된 것만으로도 참 감사할 일이지..." 가슴이 막혀 목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어서 속삭이듯 말했다. 마침 테이프에서는 뮤지컬 캣츠의 추억의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 달빛아래 홀로 서서 지난 날을 생각하며 미소할 수 있을 때야 비로서 밝아오는 새날을 맞을 수가 있으리...' 나는 어쩐지 모든일이 다 잘 풀릴 것 같은 감격이 벅차 올라서 아이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감수성이 잘 통하는 이 애는 아무말 없이 내볼에 입을 마춰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9월에 나는 그애를 기숙사에 데려다 주었다. 아이를 혼자 낯선 곳에 떼오놓기가 어려워서 미적거리는 나를 밤운전하지 않게 해있을 때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 쪽이었다. 아직은 어린티가 가시지 않았지만 헌칠한 키의 미소년이 된 아이는 기숙사 현관 계단 아래 서서 손을 흔들며 웃고 서 있었다. 수목이 울창찬 아름다운 교정에 늦은 오후의 햇살이 가득했다. 정장을 하고 서있는 그 아이는 멀리서 보니 아주 성숙해 보였다.
나는 그날 그애가 내 둥지를 떠나 힘차게 날기 시작한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 날기 시작하면 뒤도 안 돌아보는 새새끼들과는 달리 우리 애들은 날라가면서도 가끔씩 뒤를 돌아 보며 내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확인하고 미소를 보낸다. 아이들의 편지가 바로 그 것이다. 어린나이에 집을 떠나 모든 일을 혼자 꾸려나가 야하는 아이 자신인들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을 것인가. 그러나 그의 편지는 언제나 재미있는 일, 신나는 일로 꽉 차 있다. 나는 그런 편지에서 언제나 행간에 넘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나 사춘기의 고민을 함께 읽게 된다.

또 그들은 철새 같이 방학이 되면 집을 찾아 든다. 집에와서 처음 며칠은 잠만 잔다. 오죽 타향살이가 고달펐으면 그렇게 정신없이 잘 수 있을까. 집이란 그들이 피곤한 날개를 쉬어가고 허전했던 마음을 충전해주는 정거장이다.

작은 아이가 고 2 때였다. 방학때 왔다가 돌아가는 짐을 챙기며 옷장 안쪽에 그대로 걸려있던 아버지의 양복을 꺼내 입어 보더니 거울앞에서 나를 부른다. "어머니, 이것 보세요. 아버지 옷이 이렇게 잘 맞아요. 인제 내가 정말로 아빠 같으니까 어머니 좋으시죠?" 하며 까불어 댈때 나는 그에게서 남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듯 하여 깜짝 놀래 얼른 돌아 섰다. 아무리 덩치는 어른같애도 내 마음을 그 아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정말로 이 아이를 일찌감치 내 곁에서 떠나게 했던 것이 잘 한 일임을 다시 느꼈다.

어느덧 작은 아이가 대학 3학년의 청년으로 자랐다. 세월은 그냥 흐른 것이 아니고 기적같이 아이들을 어른으로 바꾸는 대역사(大役事)를 벌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길러 주는 것이 아니다.그들속에 내재한 싱싱한 생명력이 시간의 역사와 어울려서 그들 스스로 자라는 것이다.

'그대는 활이면 자식들은 화살이니. 활은 미래의 과녁을 향해 힘껏 생명의 화살을 쏘아 보내면.... 하느님은 흔들림이 없이 꿋꿋한 활을 힘차게 날라가는 화살만큼이나 어여삐 여기시리...' (카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자녀들에 관하여' 에서)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별로 많지 않다. 흔들림이 없는 꿋꿋한 활의 여운이 화살의 향방과 힘을 지속시켜 주는 것을 지켜보고 또 언제나 그들이 들려서 쉬어갈 수있는 아늑한 둥지를 지키는 일 정도이다.

항상 기도를 하면서 내자신을 위하여 하느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나보다 훨씬 어렵고 약한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까지 하느님께 너무 보채서는 안될 것 같애서이다. 그러나 아이들에 관한 한 그들 뿐 아니라 어디에서인가 자라고 있을 그들의 배필이 될 아이들까지도 항상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도록 지켜주십사는 기도를 빼놓을 수 없는 염체없는 어미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