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여년전에 뉴욕의 금싸라기 땅인 맨해턴 섬을 아메리컨 인디언들은 화란 사람들이 가져온 신기한 공산품에 눈이 어두어 단돈 40불정도에 팔았고 100년전만 해도 러시아는 자원의 보고이며 군사적 요충지인 알라스카를 단돈 700여만불에 팔았다.

남의 일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7-80년전만해도 일본공장에서 나온 매끈한 사기제품에 홀려서 이조백자나 분청사기를 맞바꾸었고 수백년을 쓰던 원목 수제 목가구를 미련없이 합판, 호마이카제품의 광택나는 새가구와 바꾸었다.

또 이런 일은 먼 과거에만 일어 났던 일이 아니라 우리의 눈앞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로마 바티칸의 시스틴채플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필생의 대작인 천정벽화를 1990년에 일본TV회사가 어마어마한 비용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정화작업을 해주는 댓가로 앞으로 15년동안 그림에서 발생하는 모든 저작권을 받았다. 또 요즈음 컴퓨터의 황제 빌 게이츠는 소리없이 전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의 소장품에 대한 디지털화 권리를 사들이고 있다. 미국의 각 방송사들은 앞으로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까지 불리우는 주문식 비디오의 자료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과거의 영화필림의 디지털화 권리를 사들이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남이 눈을 뜨기 전에 앞 일을 내다보고 현명한 투자를 하는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하다. 또 비교적 정보 접근이 용이한 현대에서 옛날의 반속 임수로 남의 물건을 강탈하듯이 가져가는 것은 아니므로 디지털저작권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거래가 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즈음 빠르고 조용하게 일어 나고 있는 디지털화 권리의 선점의 노력이 지적재산의 소유권이 몇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일차 산업사회였던 농업사회로부터 이차 산업 사회였던 20세기 중반까지도 힘세고 똑똑한 나라들은 땅이나 원자재 같은 물질의 확보를 위해 식민지를 넓혀 나갔다. 물질적인 것이 가장 큰 힘을 쓰는 것이었으므로 땅과 물질자원은 가장 가치있는 투자대상이었다. 그러므로 정보화 사회로 불리우는 삼차산업의 현 시대에서 정보가 가장 가치 있는 투자대상이기 때문에 또 힘있고 똑똑한 사람들은 정보에 투자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정보와 지식의 가치는 과거에도 무시된 적은 없었다. 일차 산업사회나 이차 산업사회에서도 정보의 이용은 결과의 성패를 좌우했으며 인간 지식의 기록은 가장 중요한 교육자료로 인식 되었으며 정보의 축적은 곧 인류문화의 연속성을 말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즈음 많이 읽히고 있는 [디지털이라는 것](Being Digital)의 저자 네그로폰테 (Nicholas Negroponte)는 정보화사회가 과거의 어느 시대와 구별될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정보의 기록과 전달, 사용 방식에 일어난 획기적인 변화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과거에는 문헌정보나 그림정보는 인쇄 매체에 소리정보는 녹음테이프나 음반에, 영상정보는 필림이라는 각 각 다른 물질적인 원자매체(Atom)에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었다가 기록되어 있는대로 꺼내서 사용하였다. 그러나 디지털방식에서는 문자나 그림, 소리나 영상 등 모든 것을 똑같이 0과 1의 시그널인 비트(Bit)로 기록저장했다가 꺼내 쓸 때는 원형대로 각 각 재생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원자매체의 물질적인 제약조건인 부피나 물류전달에 드는 비용과 시간에서 완전히 해방이 되었다.

새로 생산되는 모든 정보는 순시간에 매체의 구별도 없이 대량의 정보가 기록, 축적되고 검색, 전송될 수 있는 상태로 준비되어 있는데 과거의 물질적인 원자매체에 갇힌 기존의 정보를 하루 빨리 비트매체로 디지털화하여 동등한 자유로움을 부여하지 않으면 결국 사용이 어려워지니까 사장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디지털화를 서두는 정당한 이유이다.

또한 네그로폰테는 원자매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현재의 저작권법은 어느나라의 것도 멀티미디어의 비트매체의 속성에 맞지 않으므로 완전히 새로운 기초에서 저작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 세기 초에 최초로 입법되어 지난 300년 동안 새로운 매체를 그럭저럭 수용해 왔던 저작권법의 포용력의 한계는 원자매체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데이터베이스에서 여러가지 종류의 저작물을 사용자가 전송으로 직접 원하는 형태로 꺼내 사용하거나 합성해서 다른 것을 만들기가 쉬어 졌기 때문에 현재의 저작권법에서 핵심인 복제권, 배포권, 전시권, 방송권이나 이차저작물작성권 등이 각 각 분리될 수 있는 권리로 명확하게 구별하기가 어려워졌다.

활자의 등장이 매스미디어의 시대를 열었고 저작권법을 입법시켰다. 이제 멀티미디어의 시대는 활자의 퇴장을 강요하였으며 새로운 지적재산권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법이라는 것이 항상 너무 늦게 따라 오고 속도제한이 없는 정보초고속도로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방식의 정보생산, 유통, 사용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나 현재 추진되고 있는 도서관 디지털화 사업을 보면 기존 인류문화의 모든 물질적 기록이 비트로 일단 전환될 것은 확실하다.

현 단계에서 우리 모두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저작물을 기술과 자본을 가진 몇사람의 손에 쥐어주게 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디지털화한 정보자원에 대한 접근권이 새로운 저작권법에서 확실하게 보장되어야 하며 또 너무도 쉬운 기계적 접근방법 때문에 저작물 이용자가 자칫하면 침해하게 될 수 있는 저작자의 권리에 대한 배려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아무리 변화가 심한 시대에서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저작자의 정신적 노고에 대한 정당한 댓가의 보장과 동시에 자유로운 저작물이용의 결과로 얻게 되는 문화수준 향상의 절묘한 균형이 저작권법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