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뉴스에서 '이코노믹 애니멀'이라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이름을 얻었던 일본
사람들을 제치고 미국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일벌레'가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경영과학의 응용과 최첨단 과학기술의
도입으로 노동시간은 계속 줄어 들어 여가를 즐기는 생활이 될것이라던
70년대의 미국학자들이 내놓은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이다.
예측이 대강 맞으려면 상황에 충격적인 변수가 개입되지 않아서 어떤 추세로 연결이 되어야 한다. 또는 변수가 있더라도 그것이 이미 예측되었거나 계획되었던 것이야 한다. 1970년대에 내어 놓은 20세기 말에 대한 많은 예측이 어긋나는 것에는 199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갑자기 보편화된 전자통신, 즉 인터넷의 생활화가 그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21세기의 생활을 20세기의 것과 확실하게 구별해 주는 것이 전자상거래(Electronic, E-commerce)의 일상화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상거래(Traditional, T-commerce)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거래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한 점과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최종단계의 상품뿐이라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도 아무리 빠른 항공편이라도 2주일이 걸렸다. 상담편지 한번 내놓고 여유있게 회답을 기다릴 수 있었다. 요즈음의 이 메일은 돌아서기도 전에 회답이 오고 다음 단계의 진행을 재촉한다. 회답을 기다리는 여유는 커녕 숨돌릴 시간도 없다.
밤과 낮이 다른 지구반대편을 상대로 거래를 할 때 서로의 낮시간을 생각하고 일하려면 결과적으로는 서로의 밤시간까지 일해야 한다. 낮과 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하루, 일주일 같은 시간상의 마듸가 어느틈에 실종되어 버리고 하나의 긴시간 선상에서 일이 계속될 뿐이다. 늘 시간에 쫓기고 일에 다그침을 당하며 살아야 하니 누구나 일벌레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게 일을 하니 소득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다들 많은 액수의 월급을 받는다. 그러나 워낙 임금이 높으니 모든 사회적 서비스도 비싸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의 약점을 노린 상업적 대행서비스가 워낙 기기묘묘한 것이 다 상품화, 전문화 되어 있기 때문에 일거수 일투족이 다 돈이 들게 되어 있다. 일상생활 뿐아니라 노는데도 쉬는데도 돈이 든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새로운 기술, 새로운 이론이 계속 쏟아져 나와 새로운 작업방법이 익숙해질 여유도 없이 더 새로운 것이 밀고 들어 온다. 평생동안 공부하고 익히고 정신 차려야만 현재 수입을 유지하거나 계속 늘릴 수 있고 그래야만 더욱 올라 가는 생존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대학에서 전공한 지식으로 전문직이랍시고 일생 대우 받고 살았던 전세대들의 이야기는 전설에나 나옴직한 일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경제성장의 열매가 인간의 삶의 질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한계를 현대인은 눈으로 확실히 보고 있으며 온몸으로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인간이 하기 어렵거나 귀찮은 일을 대신 시켜서 부려 먹으며 편히 살려고 만들어 낸 컴퓨터의 작업 속도에 현대인은 숨가쁘게 쫒기며 일벌레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結者解之의 원칙으로라면 과학기술보다 한수 위라고 믿는 인간의 지혜가 이번에는 동원될 시기가 이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