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년시절은 전후의 가난하고도 암울한 때였다. 가끔 보게 되는 외국의 영화에서 내가 제일 부러웠던 장면이 여자가 멋진 자동차를 몰고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멋진 자동차에 대한 부러움이라기보다 여자가 운전을 하고 다니는 기동성과 자유로움에 대한 말할수 없는 동경이었다. 그때로서는 내가 일생동안 아무리 열심히 일해보았자 한국에 살아가지고는 내 자동차를 가지고 서울거리를 내가 운전하고 돌아다니게 될 것은 도저히 꿈에도 상상을 못할 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게 되었을때 내 마음 속으로 몰래 좋아한 것은 마침내 누구라도 자유롭게 운전하고 다닐 수 있는 나라로 갈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격과 기대때문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염불보다 젯밥에만 마음이 있던 아이였다.

1960년대 중반 유학시절에 우리가 처음으로 산 차는 6년이나 된 중고차인 독일제 폴크스 바겐이었다. 워낙 기계를 잘 만지는 남편은 차와 같이 따라온 너덜너덜하게 낡은 자동차 설명서를 통독하고 차를 열고 기계를 다 살피고 설명서가 손때가 묻은 것은 전주인이 열심히 읽고 차를 잘 돌보았다는 표시라고 좋아했다. 그는 운전을 배우고 이 세상에 태어난듯이 쉽게 운전을 시작했다. 문제는 나였다. 마음같아서는 운전석에 앉기만 하면 차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줄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남편은 운전을 배우려면 우선 기계에 대해서 웬만한 기초 지식은 있어야 한다고 그 지저분한 매뉴얼을 읽기를 강요했다. 나는「헌차 하나 사가지고 되게 재시네」하였지만 속으로는 헌차고 똥차고 바퀴달리고 운전하면 달려주는 것을 우리가 드디어 갖게된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좋아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운전을 빨리 배우고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싶어 견딜수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운전면허를 받으려면 우선 필기시험에 합격하여 운전연습 허가증을 받고 그것을 가지고 면허있는 운전사가 동승하면 길에서도 운전연습이 가능하며 나중에 더 익숙해진 다음에 실기시험을 보아 정식면허를 받도록 되어 있다. 나는 우선 운전연습 허가증을 받아가지고 와서 남편에게 운전연습을 시켜달라고 졸랐다. 운전연습은 주로 밤에 학교의 텅빈 주차장에서 이루어졌다. 평소에 언제나 온화하여 듣기 싫은 소리나 큰소리를 전혀 내지 않던 남편은 운전교습에서는 딴사람이었다. 물론 나도 운동신경이나 기계조작에는 남달리 굼떠서 늘 그 방면에는 열등감을 자기고 있었지만 생전 남에게 들어본 적이 없는 험한 말을 남편에게서 수십번을 듣고는 너무 속이 상해서 아무리 내가 운전이 하고 싶지만 이런 모욕을 받아가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골이 나서 혼자 횡 들어와서는 말도 안하곤 하였다. 물론 남편은 미안해 하고 다음날 저녁에는 자기가 먼저 연습하러 가자고 권하면 나는 못이기는 체하고 따라나가서는 전날과 똑같은 장면의 반복이 몇날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나중에 미국 친구들에게 얘기하니 모두들 아무리 돈이 아까워도 운전교습은 돈내고 해야지 남편에게는 할것이 아니라고 하며 실제로 운전 가르치려다가 의가 상해서 이혼한 사람도 있다고 하며 그 정도로 끝난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 참으로 신이나는 기간이었다. 학교공부에 집안일에 쌓이는 스트레스도 휭 하고 차를 몰고 한바탕 돌아오면 깨끗이 사라졌다. 운전이 재미있어 어디 가야 할 곳이 없나를 궁리하게 되고 남편과 같이 갈때도 애걸을 해서 운전권을 얻었다. 물론 옆자리에 앉아 계속하는 그의 잔소리를 감수하고도 말이다.

미국의 자동차 도난의 반 이상이 운전을 갓 배운 애숭이들의 충동적인 운전욕구에서 일어난다는 얘기가 이해가 되었다. 운전은 하고 싶고 차는 없으니 아무차나 열려 있으면타고 돌아다니다가 아무데나 팽겨치고 달아나는 아이들의 행위가 십분 이해가 되었다.

운전을 한다는 것은 신체적인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장소를 옮긴다는 물리적인 의미도 크지만 그보다도 운전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스피드감과 해방감에서 생기는 진취성과 자율성이 주는 만족이 더 큰것이다. 미국에서 여성해방의 원동력이 된 것이 자동차의 대중화와 블루진의 유행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에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운전을 시작한 지 3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도 언제나 운전은 신나는 일이다 아무리 길이 막히고 짜증이 나는 교통체증에서라도 내 일생에서 서울거리에서 내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기적의 실현을 생각하면 음악을 들으면서 느긋한 마음을 가질 여유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