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보급이 확대된 요즈음에는 자기가 타고 다니는 차가 자기표현의 매체가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차종의 무슨 색깔의 차를 운전하는 가에 따라 주인의 나이, 성별, 또는 사회계층까지 대강은 알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차종이나 색깔이 다양화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외국의 경우에 한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가 그사람의 많은 것을 말해준다. 미국에서 흑인이 돈을 좀 벌었다하면 당장 검은 캐다락을 산다. 또 전문직에 종사하는 수입이 많은 젊은계층은 유럽제 고급수입차인 BMW나 벤츠 스포츠형을, 아이가 많거나 자원봉사에 열을 올리는 맹렬주부는 큼직한 스테이션 왜건을,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첫직장에 첫자동차를 사는 젊은이들은 스포티하면서도 비교적 값이 싼 일제 소형차들을 산다. 한편 보수성이 강한 재부분의 중산층 월급쟁이들은 무난하게 GM에서 만든 여러계열중 제분수에 맞는 것을 사는게 보통이다.

자동차의 색깔도 상당한 표현력을 갖느다. 보수적인 사람, 야한 사람, 깔끔한 사람등 자신의 성격에 맞는 색깔을 고르며 어떤 사람은 일부러 주문해서 이상한 색깔이나 무늬까지 넣어 자신의 개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자기표현은 자동차에 부착한 여러가지 스티커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회사 차량이 달리는 광고판의 구실을 하는 것은 오래전부터의 일이지만 자가용의 표면도 이제는 의사소통의 게시판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뒷창유리에 학교나 기업체의 이름을 표시하는 스티커를 부쳐 자신의 소속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차 뒷 범퍼에 붙이는 온갖 종류의 스티커로 더욱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공공연하게 하고 다닌다. 선거때가 되면 각자가 지지하는 당이나 후보에게 한표를 호소하는 스티커를 부친 차를 흔히 볼 수 있으며 보통때도 그때그때 사회적인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선전하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예를들면 인공유산 찬반의 문제, 개인의 총기소유 찬반의 문제, 마약단속법 강화 등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부터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 야구나 축구팀의 필승을 다짐하는 문구등도 흔히 볼 수 있다.

요즘에 와서 이런 범퍼스티커의 내용이 더욱 개인적인 감정의 노출도 서슴치 않게 되었는데 단순히 호의적인 인사말의 교환으로부터 어떤 것은 상당히 음란스러운 것을 암시하는 뻔뻔 스러운것도 있어서 신호등에서 기다릴때 뒷차의 운전자를 당혹하게 하는 수도 있을정도이니 아마도 얼마 안가서 스티커의 문구검열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아니할수가 없다.

몇년전에 미국의 록키 산 지역을 자동차로 여행할 때 어느 노부부가 아주 호화판 캠퍼를 몰고 유람을 다니는데 그 캠퍼뒤에는 「우리는 자식들에게 돌아갈 유산을 까먹고 다닙니다.」라는 큼직한 스티커를 부치고 있었다. 열심히 일생동안 일하고 저축한 노부부가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돈을 남겨줄것이 아니라 신나게 좀쓰다가 가겠다는 인생 철학이 노인층 여행자들 에게 노상에서 열열한 지지를 받는 것을 보고 우리는 미소하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자기표현에는 자신이 없고 특히 강력한 의사표시는 되도록 하지 않은 문화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동차 스티커의 문구내용이 외국같이 다양화 되기까지는 상당히 시일이 걸릴 것이다. 지난번 선거때도 특정당의 차량이나 선거운동원의 차량이 아니고는 개인 시민이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나 당의 선전을 붙이고 다니는 것이 거의 없었던 것을 기억하면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노출하기를 꺼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오우너 드라이버가 많아지자 너도나도 「초보운전」표시를 단 차가 길에서 많이 눈에 띄게 되었다. 운전이 서투르니까 좀 양해해 달라는 부탁으로 애교있게 작은 끌씨로 「죄송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주위의 운전자들을 미소짓게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차에는「초보운전이니 알아서 하슈」하는 오만무쌍한 표시를 써붙인 것도 있다. 자동차 커뮤니케이션의 시대가 바야흐로 우리나라에도 열리고 있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