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십대에서 사십대를 보았을때 솔직히 말이지 별볼일, 별 재미없는 다 살아 버린 인생이라고 한심하게 보였는데 우리는 지금 전혀 그렇지 않잖아? 그러니까 참 그때는 철이 없었지... 지금은 육십대나 칠십대에 계신 분들에 대해서도 그분들 세대 나름대로 업적과 보람도 있을 것 같고 현재 그분들의 생활에서도 의욕이나 살 재미가 다 있다는것을 알수 있게 되었어. 사실 지금 이십대가 우리를 보면 그 나이에 우리가 사십대를 보던것과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 당신 이십년 자라면서 철이 났으니 헛살지는 않았구료."

이런말을 주고 받으며 우리가 마주보고 웃은 것도 이미 십여년전의 일로 우리세대는 이미 오십대의 문턱을 깊숙히 들어 선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 일단 기술적으로는 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간제품이 되는것이다. 우리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삼십년이 되어 온다니 우리는 어느틈에 이 사회에서 한세대를 일해온 것이다. 참으로 긴 세월이다.그동안 우리 사회가 너무나도 큰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흔히 우리 세대가 전환기를 살아왔다고들 하지만 이 정도의 변화속도는 앞으로는 상존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세대의 어떤 전환기적인 속성을 우리의 전유물처럼 내세우는 것은 당위성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세대 역시 어느 세대나 똑같이 우리가 자라고 교육받은 사회의 산물이며 전세대의 영욕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결과품이다. 우리가 사회인으로 한세대를 일하며 살아온 이 시점쯤 와서 우리는 한번쯤 과연 우리세대를 특징지울 수 있는 우리의 속성은 어떤것들인가를 생각해봄직도 하지않을까?

우리는 우리의 전세대나 후세대와 어떻게 다른가를 우리입장에서 천명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국민학교 입학을 앞뒤로 해방을 맞았던 우리세대는 해방세대 혹은 한글세대의 첫열매이다. 또 중학교 입학을 앞뒤로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장기를 궁핍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가난이라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춥고 배고픈 젊은 날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난때문에 좀 불편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일은 없었고 그것을 부끄럽다고 느낀적은 더더구나 없었다. 그 시대의 가난은 어느 개인의 무능이나 불운과는 무관한 시대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로부터 대학까지 우리는 불기 있는 교실에서 공부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더운물 한모금 없이 찬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언제나 깔깔거렸고 한창 멋부리고 싶은 대학 시절에도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공간적으로도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세대까지만해도 형제가 대개 대여섯은 보통이었으니 집에서 독방차지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학교에서도 늘 콩나물교실은 면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에 가서도 별로 나아 진 것이 없었다. 지금 가보면 그 좁은 공간에 어떻게 우리 모두가 공존을 했는지... 동숭동 서울대학교의 옛터, 복개도 안된 개천을 빼면 넓은 길도 아닌 대학로를 사이에 두고 대학본부쪽에는 문리대를 중심으로 구름다리 넘어 교양학부, 법대, 미대가 맞 붙어 있고 길건너에는 의대를 중심으로 음대, 약대, 수의대까지 다 한자리에서 바글거리면서 우리는 한번도 학교가 좁다거나 환경이 살벌하다고 느껴 본 적도 없었다. 계절에 따라 색다른 악취를 풍겼던 대학천은 날씨가 풀리는 봄에는 특히 근처의 염색공장에서 흘러 나오는 폐수에서 달걀 썩는 냄새가 진하게 풍겼으며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학교 앞길은 차만 지나가면 보얗게 먼지가 일었지만 아무도 우리가 공해속에 살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가져 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그 작은 캠퍼스가 우리의 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담아 주었던 소중한 장소였다. 사실상 작기 때문에 아늑한 교정은 중앙도서관의 개천뚝에 눈부시게 피어나는 개나리가 봄을 알리면 목련, 라일락이 뒤를 이었고 마로니에와 은행나무의 넉넉한 그늘이 우리에게 몸부칠곳을 주었다. 늦가을의 은행나무가 다시 한번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계절을 마감하곤 했다. 또 겨울햇살이 따뜻한 날에는 교문앞 대학천 다리 난간에는 언제나 빈틈없이 할일 없는 남학생들이 걸터앉아 해받이를 하며 되는소리 안되는 소리를 짓거리며 지나가는 여학생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들의 재미있는 일과였다. 늦가을날 어떤날, 낙엽이 수북한 보도위에 새빨간 홍옥을 소담하게 담은 리어커 행상이 어른거리면 누군가가 주머니를 뒤져 되는대로 돈을 내고 몇명이 우루루 사과를 하나씩 집어들어 깨끗지도 못한 바지궁둥이에 쓱 문질러 두입에 베어 물어 맛있게 먹는 모습도 건강한 우리의 풍속도였다. 흐린 초겨울날의 잿빛오후에는 학교앞 버스정거장에서 늘 감돌았던 군밤과 군오징어의 구수한 냄새가 그 시절의 풍요로운 추억으로 간직 되었다.

공부이외에는 모여서 입씨름 밖에는 별로 하고 놀거리가 없이 보낸 대학시절이었지만 우리는 많은 평생 친구를 만들었고 어떤사람들은 평생을 같이 할 배우자를 만나는 행운도 안았다. 시간에 등을 밀리듯 졸업을 하고 사회에 첫발을 드려 놓았을때도 아무도 직종과 자신의 적성을 따지지 않았고 보수나 직장환경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사회의 어느분야도 미개척지었기는 마찬가지었기에 직종의 장래성같은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고 직장이 있어 일할 기회가 주어진것만 다행으로 알고 그냥 열심히 일만했다.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어 유학의 꿈을 어렵게 실현한 사람들도 집에서 학비 송금이라고는 일전도 기대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 었지만 어찌 어찌 몇년을 고생하고 나면 학위를 받고 귀국하였고 또 우리사회가 필요로하는 어느 구석을 찾아 들어가서 열심히 일을 했다. 젊은날에 노는것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돈을 쓰는 재미를 익히지 못한 우리 세대는 일밖에는 할것이 없이 삼십대와 사십대인 육십년대 에서 팔십년대의 세월을 살아 온것이다.

이렇게 살아오는 동안에 우리는 가정을 이루고 다음 세대를 키워내어 그들이 이미 사회인으로 우리의 일에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우리가 열심히 일만 한 결과 성취 해 놓은 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에 우리와는 체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생존에 급급했지만 그들은 삶의 질이나 방법의 선택이 문제이다. 우리에게는 감각이나 기분은 어디까지나 개인사정으로 끝나는데에 비하여 그들에게는 그것이 집단 적인 행동결정에 주요소가 된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사는 것을 옆에서 보고 또 우리가 못가지고 못누린 것을 우리가 힘자라는 데까지 해주면 그들이 고마워하리라고 믿었다. 또 그들도 우리의 가치관이 나 우리의 인생철학을 근본적으로는 동조하는 건실한 젊은이들로 자라줄 것을 우리는 희망했다. 물론 우리세대가 우리가 성장한 사회여건의 산물이듯이 그들도 그들이 자라 난 사회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들이 우리 세대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탐탁하게 보아줄 수 있는 일이 많지가 않다.우리 세대를 제일 슬프게 하는 것은 우리 가 애써 이루어 놓은것을 아무런 미련없이 정의사회건설을 위한 파괴라는 미명하에서 때려부시는 행위이다.유리창 한장도 소중한 재산으로 여기고 종이 한장 물한방울도 아 끼고 살며 이만큼 축적해온 우리의 필생의 일을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우리를 보면 숨막히게 답답해 한다. 실컷 재미있게 맛있는것 먹고 신나게 노는가하면 으례 끝에는 춥고 배고프던 시절의 얘기를 빼놓지않고 한다. 그것도 처음 한두번은 신기한 소설이야기같이 재미도 있었지만 좋은 얘기도 아닌데 몇번 들으면 구 질구질하게 들린다. 왜 어른들은 모두가 한판일까? 기분껏 한바탕 신나게 놀고 돈도 쓰고 할일이지 그저 일밖에 모르고 아끼라는 소리만 하고 짜게 굴고...

이렇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또 우리는 한심스럽고 걱정이 된다. 항상 버는것보다 소 비를 많이 하고 저축보다는 빚을 지는 소비성향이 높은 이들을 어찌 믿고 살 것인가. 우리세대는 우리보다 더 생활여건이 나빴던 우리전세대의 노후를 봉양하는 것을 당연 하게 생각했지만 우리는 자식세대에 별로 기대하지 못한다. 여기서도 우리세대의 이중 적인 부담은 우리가 당해야 하는 현실이 아닌가.

오십이 넘은 이 나이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을 바꾼다는 것 은 불가능하고 또 우리는 아무도 그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우리 방식이 편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에게 개인의 향락을 위해 무한정의 돈과 시간과 자유가 주어진다고 하여도 우리는 크게 퇴폐적인 탐익에 빠지지도 못하고 별로 큰 돈도 써보지 못한채 대부분의 남은 돈과 시간과 자유를 반납할 것이 틀림이 없다. 칠십도 되기전에 從心所慾 不踰矩 의 경지에 들어갔다는 것은 천만 아닐텐데... 오히려 우리는 이 시점에 이르러 우리 인생의 어느때보다 많은 회의를 느끼고 허망함을 달랜다. 중년의 정신적인 위기를 마지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외곬으로 융통성이 없이 살아 온 우리가 이 위기를 힘들게 맞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