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운전이란 자기만 조심한다고 안전이 보장된다는 법이 없으니 항상 그날의 재수나 그해의 운수 길게는 팔자나 운명까지도 들먹여야 설명이 되는 일들도 허다하기 때문에 운전자는 늘 자신 만만한 태도나 큰소리는 하지 않게 된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는 하지만 우선은 항상 방어적인 운전원칙에 따라 신호나 교통법규를 지키고 될 수 있는 대로 양보하고 다니는 것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盡人事의 한계이고 그렇게 하고도 무슨일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待天命하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리라.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낮에 주택가의 비교적 조용한 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주택가는 아이들이 어디서 언제 튀어 나올지도 모른다는 조심 때문에 천천히 주위를 살피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로 앞의 작은 골목에서 쥐방울만한 계집아이가 굴르듯이 내 차 앞 큰 길로 뛰어나와 길을 건너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래서 브레이크를 밟았고 다행히 차는 무섭게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급정거를 했다. 뒤에 바로 따라오는 차가 없었던 것도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고 계집애는 길 건너에서 친구와 손을 잡고 무슨 아슬아슬한 곡예나 마친듯이 자랑스럽게 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당장 뛰어내려가서 그애를 잡아서 볼기라도 펑펑 패주거나 아니면 애를 자동차길에 방목해 키우는 에미를 찾아 내어 혼을 내주어야 할 것 같앴다. 그러나 내 가슴은 너무 떨리고 등골에는 식은 땀이 흥건하여 맥을 추수릴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오금이 딱 붙어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 상태에서 숨을 가다듬고 가슴을 진정시키는 동안 그 아이는 이미 길건너 골목으로 사라진지가 오래였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내차가 그 자리에 서지 못하고 한 50센치를 더 미끄러져 갔다면...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정말로 그 다음 생각은 차마 할 수도 없었다. 그 아이가 굴어가듯 뛰어 간 시간과 내가 차를 겨우 세운 시간은 그야말로 間髮의 차이었다.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기적같이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의 그 낯선 주택가의 골목이 너무도 너무도 평화로운 사실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참 후에야 다시 정신을 차려 그곳을 떠나면서 나를 그렇게도 혼이 빠지게 놀래주고도 전혀 죄의식은 커녕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던 아이의 무지한 순진성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다섯살 정도의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 행동이 자신의 생명이 걸린 위험한 짓이라거나 또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큰 충격의 고통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 꼬마의 열배 이상을 살아 온 내가 그 동안에 별 생각없이 한 말들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한 행동이 남을 가슴아프게 하고 놀라게 하고 또 실질적인 손해를 보게 하고도 알지조차 못한 경우가 전혀 없었다고 과연 자신있게 단언 할 수 있을 것인가. 또 그런 결과들에 대해 의도적이 아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만으로 쥐방울 같은 꼬마같이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일상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좀 더 정성스럽게 주위를 헤아리며 살아서 우선 그런 경우가 생기는 일을 줄이고 또 내가 무의식적으로 남에게 불편이나 불행의 원인을 만들게 되는 일이 없게 해주십사는 말을 매일의 기도에 포함시키게 된 것도 내가 그 꼬마 때문에 터득하게 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