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몇차례의 여론수렴이나 공청회등을 거쳐 역사적인 심판을 받을만큼 받아서 이제는 그 건물이 일본식민주의의 흔적이라기보다는 우리 땅에 우리 국민들의 혈세와 노동력, 손공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건축물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느닷없이 때려부셔 민족의 묵은 한풀이를 하기로 결정한 것에 많은 시민이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 36년의 강점은 우리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치욕임에 틀림없다. 또 그 건물이 우리 민족을 말살 하려던 일본총독부의 청사였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건물의 원래 건축의도나 사용이 어쨋던 간에 우리 정부가 들어 가서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한 기간이 일본인들이 쓴 기간보다도 이제 훨씬 오래 되었다. 일본의 흉악한 망령이 어느 구석에 있었다가도 이미 지금쯤은 우리의 씩씩한 민족정신에 밀려 혼비백산을 했을 것이 분명한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일본이 지은 건물, 우리를 지배하던 총독부가 쓰던 건물이라고 때려부셔야 한단말인가.

지금 50대인 우리 세대에게도 그 건물은 총독부가 아닌 중앙청이다. 어린시절 흑백필림의 대한뉴스에서 이승만박사가 초대대통령으로 최초의 우리각료들과 찍은 단체사진 배경에 번듯하게 나온 건물, 6.25 戰禍에 골격이나마 살아남아 9.28 서울탈환후 제일 먼저 감격스러운 태극기가 계양되던 건물, 그리고도 오랫동안 우리정부의 터전이였으며 서울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역사란 榮辱의 누적이다. 기록을 말살한다고, 침략자가 세운 기념비나 쓰던 건물을 싹 없애버려서 그 흔적을 지워버린다고 그 사실이 없어지거나 달라질 것인가.

인도의 수도 뉴델리의 거대한 政府聽舍群은 300년간의 영국식민지 하에서 총독부가 지어서 사용하던 건물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또 그 뿐인가. 인도의 관광수입을 대부분을 올리고 있는 올드 델리와 아그라의 궁전, 건축미의 극치인 타지마할까지도 외족 침략자인 무갈제국의 왕권하에서 건축되고 사용되던 것들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오늘 인도의 재산이며 인도의 상징물이다.

스페인의 꼬르도바를 여행하면 정말로 감격스러운 유적을 보게된다. 도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삼만명을 한꺼번에 수용하였다는 회교도의 사원은 8세기에서 10세기에 거쳐 지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중세 몇세기간 북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까지 휩쓸었던 침략자 이스람족이 세운 것이다. 15세기말 그 유명한 카톨릭여왕인 이사벨라가 스페인에서 완전히 회교도세력을 몰아내고 스페인을 기독교 왕국으로 통일한후에도 그 사원은 그대로 보존되었고 그 거대한 사원의 건물내 한가운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카톨릭 성당이 그 후에 건축되어 두 종교의 신전이 한자리에서 역사의 흐름을 증명하고 있다.

자랑스러운것만이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수치와 회한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우리는 모든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증거로 삼아야 한다. 더구나 그 현장이 중앙청처럼 그 자체로서 쓸모있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면 그 것을 부신다는 것은 국가재산의 파괴이며 동시에 역사를 기만하려는 행위이다.

오천년 우리역사에서 36년은 긴세월이 아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일제의 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피해의식 열등의식에 사로 잡혀 실질적인 자해행위를 해야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