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사회의 필연적 결과인 도시인구 집중현상이나 도시생활의 필수품인 자동차는 우리 인구의 많은 사람들의 뿌리를 흔들거다 아예 뽑아 버렸다. 우리사회에서 믿을 만한 사람을 지칭할 때 흔히 말하던 '근본이 있는 사람' '집안을 다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구닥다리 옛날 말이나 촌스러운 말이 되어 버렸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일이 있는 곳을 따라, 또는 기분이 맞는 곳을 따라 이동하면서 사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 드리게 되었고 이러한 이동생활 패턴을 가능케 한것이 자동차의 기동성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자동차라는 것이 일단 사람을 태우고 나면 그 사람을 자신도 모르게 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나쁜 주술을 가진 것 같다.

운전자가 몰염치한 짓을 할 수있는 못된 심리의 밑바닥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의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첫째로는 자동차의 기동력에 대한 믿음이다. 사람을 다치고 기물을 부수고도 재빨리 그 자리를 떠버릴 수가 있다. 요새 유행하는 자동차 날치기나 사고후 뺑소니도 현장을 얼른 모면하여 증거인멸을 가능케 하는 자동차의 기동성 때문에 일어 날 수 있는 범죄가 아니겠는가.

둘째로 자동차라는 철갑으로 몸을 쌌으니 쉽게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것에 대한 안심이다. 사람이 얼굴에만 철판을 깔아도 철면피가 되는데 전신을 철판으로 가렸으니 체면차리기를 포기하기로 든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셋째로는 자동차가 가진 힘에 대한 믿음이다. 그힘은 차체의 덩치와 속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맨몸의 사람들에게는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위협이며 같은차끼리도 덩치가 큰차가 작은 차를, 속도가 빠른 차는 느린 차를 겁주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 사회에서 질서가 유지되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서로가 남을 의식하고 체면을 차리며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한자리에서 대대손손 뿌리를 내리고 살던 부족사회에서는 못된 짓을 하고 현장을 모면하기도 어렵고 했다고 해도 그게 오래 갈 수가 없다. 또 철면피 노릇을 하기도, 더구나 어느개인이 남이 안가진 힘을 가졌다고 남을 위협하기도 다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성악설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는 남이 보지 않으면, 또는 남을 의식하지 않으면 몰염치한 짓을 쉽게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음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런데 자동차라는 괴물이 인간의 나쁜 심성인 복면성, 뜨내기성, 허세를 조장하는 것이다.

자동차는 물건이다. 더구나 현대사회의 생활 필수품인 문명의 이기이다. 물건자체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을 수 없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용도와 사용방법에 따라 문명의 이기가 백주의 흉기로 둔갑을 하는 것이다.

동물은 이름 그대로 움직이면서 생활한다. 인간 동물성의 힘을 확대해 준 자동차가 인간을 짐승으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 문명의 이기란 그것으로 인하여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에만 쓰이기로 되어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