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텍사스의 끝이 없는 평원위를 나르다가 나타난 달라스는 큰도시였지만 아주 작게 보였다. 비행기가 공항에 가까이 가서 유심히 내려다보니 다른 어느 비행장보다 서있는 비행기가 많은 것이 이상하게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청사에 내려보니 그 넓은 대합실에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실내방송에서는 동부의 기상이 예상외로 악화되어 지독한 눈보라와 폭풍으로 인해 시카고부터 동쪽의 모든 비행장이 폐쇄되었고 현재로서는 언제 다시 열릴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아나운서 멘트가 계속나오고 있었다. 날개가 묶인 비행기와 발이 묶인 여행자로 비행장의 안팎이 모두 차 있었다.

항공사 카운터는 직원들이 총동원되어 여행자들이 숙박할 호텔을 할인하여 알선하는 일, 각자의 목적지에서 제일 가까은 열려있는 다른 도시의 공항까지 비행기를 바꾸어 태우는 일등으로 눈코 뜰새가 없었지만 워낙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은 좀처럼 짧아지는 것 같질 않았다. 나는 지루하게 기다리면서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첫째로 놀랜것은 그곳 사람들의 침착성이었고 둘째로 감탄한 것은 항공사 직원들의 태도였다. 승객들 중 사정이 급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텐데 아무도 소리를 높이거나 발을 구르지도 않았다. 아이들까지도 떼를 쓰고 짜증을 부리거나 수선스럽게 뛰어다니는 일이 없이 어른의 지시에 따서 모두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또 항공사 직원들은 똑같은 질문에 백번이고 천번이고 친절하고 예의있게 대답을 하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마치도 동부의 눈보라가 자신들의 실수이기나 한 듯이.

드디어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혹시 그 시간이후에 라스베가스로 돌아 갈수 있는 비행 기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 직원은 컴퓨터를 조회해보더니 한시간 반후에 비행기가 마침 있고 그걸 이용하면 밤 11시경 라스베가스에 도착한다고 알려주면서 내 의사를 물었다.

나는 우선 그날밤을 길에서 새우지 않게 된것만도 다행이라 그 비행기에 태워달라고 부탁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워싱톤에 가는 비행기표가 어찌되었는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 직원은 다시 내게 그럼 워싱톤에는 언제 가겠느냐고 예약을 다시 넣어 줄테니까 라스베가스 공항에 가서 새표를 받으라고 챙겨 주는것이 아닌가.

물에 빠진 사람이 건져주니까 옷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 된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도 속으로는 들었지만 나는 그제서야 완전히 본전을 찾아볼 생각이 들었다. 즉 워싱톤에 그날 가지 못하면 그 다음 행선지인 피츠버그로 이삼일 후에 직접 가는 것이 나으니 그 비행기 값의 차액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물론 쓰지 않은 비행기표는 환불해 드리지요. 워싱톤에 못가셔서 여행에 차질이 생겨 죄송합니다. 어쨌든 라스베가스에 가셔서 공항 저희 항공사 카운터에서 말씀하시면 손님이 원하시는대로 다 해드리도록 제가 입력을 해 놓겠읍니다" 항공사직원들의 태도에서 서비스업종사자들의 철저한 프로정신을 보고 나는 우리사회 의 현실이 떠올라서 입맛이 씁쓸했다.

언젠가 제주공항에서 폭풍때문에 발이 묶인 승객과 항공사직원들의 실갱이와 소동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지금 이공항의 대합실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항공사는 일기가 우리책임이냐고 발뺌을하고 승객들은 고함을 지르고 멱살을 잡고 기물을 파괴하고... 더 생각을 하기가 싫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