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00여만의 작은 도시국가가 미래를 향한 비젼과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지도자를 만나 일사분란하게 국가목표를 향해 매진하도록 독려받으면 얼마나 짧은 기간에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탈바꿈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실례가 바로 싱가폴이다.

처음으로 싱가폴을 여행했을때 비행기 안에서 나누어 주는 세관 신고서 용지를 보고 깜짝 놀랬다. 빨간 대문자 글씨로 '사형'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에 작은 글씨를 자세히 보니 '마약을 거래하는 자'에게 해당되는 형이었다.

싱가폴의 관문인 챵이 공항은 과연 내가 본 어느 공항보다 깨끗했고 거대한 종합 위락시설로도 완벽했다. 고급식당과 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예쁜 상점들, 극장, 헬스클럽에 호텔까지 고루 가추고 있어 국제 항공의 중심지로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승객의 편의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기분좋게 주머니를 터는 세련된 상술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시내에 나가보아도 길이나 공공장소의 청결은 다른 어느 선진국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원래는 더럽기로 이름이 난 중국인이 인구의 80프로를 차지하는 이곳이 어떻게 이렇게도 깨끗할까하는 의문은 곧 풀렸다.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얼마, 쓰레기 버리면 얼마, 침뱉으면 얼마, 강아지 끌고 다니면 얼마, 도로무단 횡단 얼마, 경적 울리면 얼마.... 어디를 가나 벌금리스트가 공시되어 있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공공기물 파괴나 질서를 문란케 하는 소요행위는 벌금으로는 어림이 없고 꼭 라탄(등나무)곤장으로 볼기를 치는 태형이 예사로히 지금도 행해지고 있어서 벌금리스트 뒤에는 무슨일에는 라탄 10대, 또는 20대등이 구체적으로 공시되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질서있는 도시의 이면에는 벌금, 태형, 사형이라는 으시시한 협박이 늘 공존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벌이란 법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무관한것이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는 장치이므로 대부분의 시민은 정부의 강력한 시책을 찬성하는 것으로 보였다.

싱가폴의 인상을 묻는 현지인에게 나는 농담 삼아 '당신네 나라는 나쁜짓의 쇼핑센터 같군요. 무슨 일이든지 벌금으로 살수 있도록 정찰제를 실시하고 있으니...'하고 웃었더니 그는 상당히 당황하면서 국민의식이 낮은 나라에서는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야 짧은 시일내에 이런 성과를 올리기 어려웠다는 변명을 하였다. 나는 미안해서 얼른 우리나라도 이런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가 국민의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동감을 표시해 주었다.

다음날 다리 하나로 국경이 연결된 말레시아의 변방도시를 가 보았는데 그곳은 어디를 보나 더럽고 무질서한 것이 너무나 싱가폴과는 대조가 되었다. 그러나 재미 있는 것은 그곳에 와서 쓰레기 버리고 교통법규 위반하고 소란을 부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싱가폴 사람들이라고 그곳 사람들은 머리를 흔드는 것이었다.

"법제로서 다스리고 형벌로서 질서를 유지하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잘못을 수치로 알고 또 바르게 되느니라"(道之而政 齊之而刑 民免而無恥, 道之而德 齊之而禮 有恥且格) 라는 공자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인구의 대부분이 공자님과 무관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구나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