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고속도로, 국내선 여객기 등으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라고 신기해하던 때가 엇 그제인데 서울 부산간을 3시간 이내에 돌파 한다는 경부 고속철도의 개통이 눈앞에 다가와 이제는 전국이 반일생활권이라는 말도 귀에 설지 않게 되었다.

가히 혁명적이라는 통신기술로 인해 전세계의 정보에 즉각적인 접근이 가능해졌고 또 이렇게 사람이나 물건의 유통에 걸리는 시간이 자꾸 단축된다는 것은 산술적인 계산 으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을 빨리 처리하여 자유롭게 쓸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우리는 정신적으로 감성적으로 더욱 풍요로운 창의적인 일에 시간을 보낼 여유가 생겨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사람의 욕심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제공하는 생활의 편리를 앞질러 가서 계속 높아가는 생활 수준보다 더 높은 기대치 때문에 그것을 쫓아가는 것이 힘이 들고 시간의 여유는 점점 더 없어 지고 있다.

얼마 전 고속 버스 터미널에서 모르는 사람과 택시합승을 하게 되었다. 그는 스치로폴 보온 상자에 무엇인가를 담은 짐을 들고 있었다. 말 좋아하는 택시 운전사와 기분이 맞아 하는 얘기에서 별로 배운 것이 없어 보이는 이 시골아저씨의 신랄한 현대 문명비판론이 재미 있었다.

그는 울산의 공업단지 한귀퉁이에서 구멍가게를 하며 근근히 사는 소시민이 었다. 서울에 사는 다른 형제들은 그보다 형편이 낳아 부모님이 서울자식들과 살고 계셨다. 고속버스로 통행이 쉬어진 이래 해마다 그는 일년에 두번 부모님 생신때는 으례 새벽시장에서 활어를 사서 냉장포장을 하여 들고 서울에 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처음 한두해는 서울이 까마득하던 옛날 생각을 하면 이렇게 쉽게 올 수 있게된 것이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했고 또 서울 식구들이 고향에서 온 산 생선을 먹고 감격하는 것을 보면 자기가 돈 좀 쓰고 시간 좀 빼앗기는 것 치고는 보람이 크다고 느꼈다. 노인이 사시면 얼마나 사실까 하며.

그러나 횟수가 거듭할 수록 감격이 줄고 부담은 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지금 그만두면 불효막심한 놈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옛날 같이 서울행이 아주 며칠 걸려서 모두가 기대를 하지 못 할 때라면 모르지만 댓시간이면 오는것을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노부모생신에 안올수는 없고 오자니 생계에 부담이 되어 어떤 때는 노인들이 왜 그렇게 오래사시나 하는 생각이 모르는 사이에 들었다가 얼른 죄책감을 느낀 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말했다. '요새 세상이 자꾸 발달해서 모든것이 다 편해진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니까요. 옛날에는 꿈도 못꾸던 것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못하면 난리가 나니 힘에 겨워도 하기는 하면서도 좋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그게 진짜로는 불효가 아니고 뭐겠어요. 옛날이 좋았다니까요. 옛날이 순수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제는 돌이킬수 없는 길에 들어 선 것이고 또 아마 돌이킬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갈 사람이 없을 껄. 나부터가 그러니까...' 자기의 말이 좀 앞뒤가 맞지 않았다고 느꼈던지 뒷좌석에서 웃고 있던 나를 돌아 보며 어찌하오리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해답이 없으니 마주보고 웃을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