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어느 지점에 서서라도 눈을 높이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을 때 멀리 또는 가까히 산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은 없다. 그래서 처음으로 동경이나 방콕, 또는 뉴욕에 가서 고층 건물 창문으로 밖을 내다 보았을 때 사방을 둘러 보아도 산봉우리가 보이지 않고 대도시의 삐죽삐죽한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 오는 것이 너무도 이상했다. 아무리 도시계획이 잘되어 있고 생활조건이 좋다해도 밋밋한 도시에서 무슨 맛에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하면서. 우리말에 '산좋고 물좋은 곳'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지만 바로 서울이 그런 곳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서울시민이 휴일에 근교의 산을 찾아서 대도시의 매연과 혼잡에 찌든 몸과 마음을 달래고 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각박한 도시 생활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서울의 산은 시민들의 회원권 없는 헬스클럽인 셈이다. 더구나 그 비용효과를 따져 본다면 비싼 회비를 내고 실내에서 기계에 매달려서 기를 쓰고 일 삼아 해야 하는 헬스 클럽의 운동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이다. 운동에 유난히 재능이 없고 따라서 취미가 없었던 나도 친구들과 몇번 같이 가보면서 참으로 등산을 즐기게 되었다. 등산같이 많은 장점을 가진 운동이 어디 있을 것인가. 더구나 서울 같이 어디서나 쉽게 산에 가기에는 천혜의 조건에서.

등산은 무한대의 자유를 허용한다. 걸을 줄만 아는 사람이면 다른 훈련이나 연습이 필요 없이 편한 신발 한켤레로 준비가 끝난다. 혼자서 할 수도 있고 마음맞는 친구와 수를 따져 조를 짤 필요도 없이 가면 된다. 시간도 운동량도 마음대로이다. 또 다른 운동 같이 승부를 걸 수 없는 것이므로 마음이 편하다. 걸으면서 또는 쉬면서 친구들과 대화를 즐길 수도 있다. 이 이상 부담없이 할 수있는 운동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등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자연안에서 생명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이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확실한 기후에서 등산은 단 두번도 같은 조건일 수가 없다. 봄의 부드러운 기지개로 깨어나는 생명은 여름으로 향해 힘찬 행진으로 그 존재이유를 웅변한다. 생명의 생존본능은 가을의 결실로 이어지고 평화로운 휴식의 겨울은 다음의 봄을 기약한다. 또 자연 속에서의 생명의 진행은 지극히 평등하다. 시간적인 장단은 다르지만 어느 한 미미한 생명도 그 진행의 과정을 빼먹거나 더 보태거나 하는 법이 없다. 등산을 하게 되면서 눈으로 볼수 있고 피부로 느낄수 있는 자연안에서의 다양성과 평등성의 공존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바위틈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게 잠간 피고 지는 티끌만한 야생화나 수백년을 버티고 서 있는 참나무는 평등한 생명권을 누리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도시중에 하나로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알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서울에서 얼마간을 살고 있는 외국사람들도 서울 근교의 산에 맛을 드리면서 서울에 정을 부치기 시작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자연이 주는 감격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니까.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의 넉넉한 품이나 뒷뜰같이 가깝고 아기자기한 남산 인왕산 모두 모두 서울시민의 재산목록에 선두로 올라갈만 한것들이다. 정말 다같이 아끼고 보호하여 우리의 자손대대로 서울에서 살맛을 찾도록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