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운행, 난폭운전, 신호위반, 차선위반, 개문발차. 운전을 하면서 살아 남으려면 누구라도 당연히 지켜야 될 기본사항을 더구나 공공교통차량 운행자인 버스기사가 운전석앞에 보라는듯이 붙혀놓은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는 안전운행수칙을 엄수하고 여러분을 정성껏 모시겠읍니다.' 정도의 선언을 해도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하고 못마땅해 할사람이 많을텐데 하면 같이 죽어야 할 일들을 안하는 것이 무슨 자랑이나 되는듯이, 아니면 승객을 위해 선심이나 쓰듯이 버젓이 적어 놓은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년 전부터 대형사고가 빈번해지자 작년초에 '94년은 불실공사 추방원년' 이라는 어이없는 구호가 건축공사장마다 나붙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 건설수주를 제일많이 따낸 재벌회사 공사장에서까지 '94년부터는 부실공사 철저추방'을 선언하여 그 전까지 자기들이 한 모든 공사가 부실공사임을 시인했고 곳곳에 붙어 있는 '절대안전시공'이라는 표어는 그 옆을 지나가는 시민들을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었다.

요즈음 국영방송의 공익광고에서 '교통사고 사망 반으로 줄입시다' 라는 표어가 나오고 있다. '교통사고사망'을 반으로 줄이자는 말은 죽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말인지 또 지금의 숫자를 반으로 줄이기만 하면 괜찮은 수준이라는 말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구호란 자신의 의견이나 결의를 여러사람에게 천명함으로써 남에게서 동조나 인정을 얻어 집단적으로 일사불란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구호나 표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회일쑤록 제대로 뭐가 안되는 불안한 사회이다. 우리는 TV화면에 가끔 보이는 북한의 사정에서 너무도 잘 알수 있다. 식량난, 생필품난에 허덕이면서도 어디에나 붙어 있는 어마어마한 말의대형 구호판들. 맹숭맹숭한 정신으로는 불안을 이길수가 없기 때문에 국민을 집단최면을 거는 것이리라.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 그대로인지 우리민족의 기질이 워낙 혼자서는 아무것도 조용히 할 수 없어서 그런것인지 우리사회에도 도처에 말도 안되는 표어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또 사람들은 그 내용이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그 무관심이 안타까워 표어는 점점 더 강력하고 자극적인 단어와 이상한 어법으로 관심을 끌려고 한다.

언어란 인간이 누리는 특권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정확한 의사표시의 도구인 언어를 소중하게 사용하는 국민만이 문화인의 자격을 갖는 것이다. 언어의 정확한 사용이란 의미, 발음, 어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그외에도 해야될 말, 안해야될 말의 구별, 말하는 상대방의 구별등의 여러가지를 뜻한다.

대부분의 구호나 표어로 떠들고 있는 말들을 살펴 보면 그 내용이 당사자끼리 조용히 다짐하고 실천해야 할 사항이다. 공공 교통차량 안전운행은 운전기사의 마음가짐과 실천에, 완벽한 건물의 안전시공은 현장 일꾼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이지 승객이나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나 큰글씨로 아무리 선언해봐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아무리 국민의 기본권이지만 표현의 남용이 만들어 내는 공해에서 우리를 지키는 사생활권도 우리의 기본권이다. 이제 우리는 말을 아끼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쓸데 없는 말 대신 조용히 다짐하고 실천하여 실제로 달라지고 있음을 결과로 보여주는 차분한 사회분위기를 언제 쯤이면 우리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