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품을 쓰고 같은 식품을 먹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같아지고 사고와 행동양식이 서로 닮아가면서 문화가 섞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의 섞임이 나라의 경제 수준이 비슷하여 주고 받는 양이 별 차이가 없으면 큰 문제가 없이 공존하거나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경우에는 경제력이 강한 쪽의 문화가 약한 쪽의 문화를 쇠퇴내지 말살시키는 경우를 우리는 수 없이 보아 왔다. 또 그렇게 극단적인 단계까지 가기 전에라도 한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에 소개되고 수용되기 전에 물질 상품으로 그나라의 존재를 우선 알리지 않고는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속물적인 인간사회에서는 물질이 정신보다 더 힘이 세기 마련이니까.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 문화만 해도 그렇다. 음식문화는 음악이나 미술같이 정신위주의문화가 아닌 물질과 정신이 혼합된 문화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음식만큼 각 민족의 역사적 배경, 그 나라의 자연환경에 따른 생활방식을 함축성있게 표현하며 독특한 맛과 냄새로 한 나라를 다른나라와 구별지어주는 것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30여년전만해도 미국의 대도시에서조차 일본의 사시미는 야만인들이 먹는 날고기정도의 취급을 받았지만 이제는 시골의 중소도시에서까지 일본식당의 사시미나 스시카운터는 젊은 고소득 전문직종사자인 소위 여삐족(Yupies)이 주로 단골손님이 되어 각광을 받고 있다. 사시미의 맛을 논하는 것이 지난날 불란서의 고급 포도주 맛을 구별할 줄 아는 신분의 상징쯤으로 올라 간 것이다. 일본의 자동차나 얄미울 정도로 편리한 전자제품에서 시작된 친근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세대가 유학하던 1960년대에는 나이 젊은 한국전쟁참전인구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음식은 미국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김치를 먹는것조차 냄새 때문에 아파트 주민의 항의를 받아야 할정도였으니 김치찌개같은 것은 끓일 엄두도 못하고 살았다. 요즈음 미국의 대도시에는 한국수퍼마켓이 없는 곳이 없고 김치는 말할 것도 없이 젓갈류까지 다양하다. 주고객은 물론 한국사람들이지만 미국인 고객도 계속 늘고 있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전세계가 하나의 시장이라는 시대적인 조류를 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세계시장에 우리 제품이 파고 들수 있었던 경쟁력을 가진 우리의 경제의 힘이 없었던들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각 나라나 각 민족의 음식은 그 문화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이다. 이점을 반대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 국민이 개방화 바람을 타고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각지역에서 그나라의 대표음식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지고 친근감을 키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단체여행을 하면서 역사적인 유적이나 이국의 풍물을 한군데라도 더 보기보다는 각도시의 한국식당을 찾아 헤매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사람들. 기내에서 주는 양식이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양념냄새가 독한 한국식 밑반찬을 들고 다니면서 식사때 돌려가며 나누어 먹는 여행객들은 외국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 것인가.

우리나라의 입지가 국제사회에서 우리음식 냄새 때문에 주눅이 들던 시절은 면하게 해주었고 이제는 비행기 안에서도 기내 음식을 한식으로 먹을 수도 있지만 그 한식은 외국사람들을 위한 배려로 생각하고 우리는 외국음식을 먹어 봄으로서 외국문화공부를 시작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여행자의 생각은 세계 어디서나 당당하게 한식을 먹으며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데에서 그치고 있느니 세계화의 구호는 남의 일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