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그런 대답에 이미 익숙해진 친구부부는 옆에서 빙긋이 웃기만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의 딸과 여러가지 대화를 하면서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되었다. 그녀의 논리는 너무도 정연했다. 미국의 중상층에 속하는 그의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 남매를 키웠는데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부모에게 전적으로 기대서 사는 것은 옳지 못하고 이제부터는 차츰 독립적인 생활을하여 자신도 인격적으로 존중받는 사회구성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너무 돈이 많이 드는 사립대학은 부모에게 너무 큰 부담이 되니까 생각할 수 없었고 그 학과가 우수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주립대학 중에서 생활비가 너무 비싸지 않은 곳에 있는 학교들을 알아 보고 결정을 했으며 집에서 먼 곳에 있어 더욱 마음에 들었지만 그 조건은 우선 순위가 낮은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래도 멀리 떠나 있어야만 힘들다고 주말에 집에 오거나 부모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일에서 빨리 벗어나게 되니까 거리도 상관은 있지요" 그는 덧부쳐 설명하였다. 그는 대학 생활 동안 학비와 기본적 생활비는 부모님께 의존하게 되겠지만 여름방학동안 열심히 일을 하여 저축해서 용돈은 자기가 벌고 저축을 많이 하려면 아무래도 방학 동안은 부모님 집에 와서 지내게 될 것이라고 선심이라도 쓰는듯이 말해서 우리는 한참 웃었다.

자율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일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더구나 공부하는 일이란 많은 부분이 굳은 결심과 극기의 힘을 요구하는 것이지 아무리 자기의 취향과 적성에 맞는다고 놀며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 그렇게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가 싫어하거나 별로 관심이 없는 일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과가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의 교육이 아직까지는 대학 입학이라는 유일한 목적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고등학생들은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별로 갖지 못했고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일생동안 사회인으로 무엇을 하고 생활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야말로 '사는게 사는게 아닌' 기간을 보냈을 것이다. 또 대학을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자신의 의사와는 별도로 수능시험성적에 따라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판단으로 합격이 가능한 학과를 지원 하거나 또는 부모님의 체면, 출신 고등 학교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적성이나 취향은 관계없이 이름있는 대학의 아무과나 가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나 일단 대학에 들어가고 난 후에라도 자신을 성찰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귀우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인생은 다시 한번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타율에 의해 대부분의 생활패턴이 정해졌지만 지금부터라도 정확하게 자신을 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위의 사람들이나 사물에서 정보를 계속 받아드리면서 자신의 생각과 연결시키며 또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자신을 유도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따라서 주위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자신이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가할 때에 우선 자신의 마음에 귀를 귀우리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자율적인 생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첫 일년을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에 맞는 대학생활의 설계를 하는 시간으로 정하자. 고등학교 이학년, 삼학년 때에 공부하던 시간을 학교공부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기 위한 많은 독서에 할애한다면 분명 대학 일년은 일생을 위한 착실한 준비와 계획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구체적인 몇가지를 실천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첫째, 지금까지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에게 의존하던 많은 자신의 몸치닥거리부터 자신이 할 뿐아니라 가족의 공동체로서의 필요한 가사에서 제몫을 하자. 빨래, 청소등의 자신의 신변잡사는 물론 가족들의 식사나 잡노동을 자발적으로 하자. 자기책임을 다하고 공동체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만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시야를 넓히고 마음을 열자. 학문의 세계는 무한히 넓고 여러분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하고 재미있는 일이 많다. 인간의 물욕은 제한된 자원에서 각자에게 할당된 몫이상으로 가지려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남의 몫을 빼앗는 것이지만 지식에 대한 욕구는 아무리 크고 높아도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력이 됨으로서 공헌을 하는 결과가 된다. 지성과 감성은 원석같이 갈고 닦을 수록 빛이나고 값비싼 귀물이 되는 것이다. 또 마음을 활짝 열어서 자기와 다른 남의 생각, 남의 느낌을 이해하고 받아 드림으로서 더불어 사는 풍요로움을 배우자. 셋째, 자신을 귀하게 대접하자.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남을 어떻게 귀히 여기고 제대로 대접을 하겠는가. 자신에게 높은 기대를 걸고 그 수준에 맞도록 정신적인 귀족이 되어보자. 인간의 잠재력은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가졌다. 그러나 항상 진지하게, 깊이 생각하여 재능을 개발하지 않고는 기적은 커녕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대학의 교과 과정이 여러분의 자율성 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많이 개정되었다.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정했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도록 전공 선택의 융통성이 높아졌다. 대학 일년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경험해 보자. 자율적인 생활과 자율적인 학문탐구는 뗄레야 뗄 수 없이 같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