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중 우연히 가게 되었던 미국의 겨울 휴양도시인
웨스트 팜 비취의 미술관에서 색다른 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로마 교황청인 바티칸의
귀중한 소장미술품 중에서 천사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골라서 해외순회공연을 하는 것을
마침 그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수많은 기독교의 聖畵에서 천사는 가장 많이 나타나는 대상임을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천사의 존재나 그 역할이 그렇게 전문적으로 세분화 되어 있다는 사실이나 천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 天使學(Angelology)이라는 독립된 학문분야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사실이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대개 신탁을 받은 종교의
창시자가 인간과 신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자이다. 또 신의 특별한 부름을 받은 순교자
등의 성인들은 실제로 지구상에 살아 있던 우리와 같은 인간이지만 그들은 대부분
인간세상에서 무지한 고통을 감내하는 殺身成仁을 통해서만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부름꾼인 천사라는 존재는 인간이 가진 육체적인, 물리적 속성인
아픔이나 속박이 없이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다니면서 좋은 일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나는 참으로 그들이 부럽기 짝이 없었다.
그림에서 나타난 그들의 모습은 한결 같았다. 해맑은 피부와 맑은 눈동자, 건강한 젊음과
아름다움, 깨끗한 마음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평화로운 표정, 하늘하늘 나부끼는
가벼운 비단 옷자락, 끝없는 기동성을 상징하는 튼튼한 날개... 설명문구에 나와 있는
그들의 역할은 또 어떤가. 막막한 인간에게는 영감을 주고 답답해 하는 자에게는
희망찬 기쁜 소식을 전하며 착하고 약한 사람들은 보호하여 지켜 준다. 또 아프고
괴로운 자들을 치유하고 위로하며 이 세상을 떠나는 영혼을 하늘나라로 인도한다.
말하자면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인간의 능력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을 기적같이
쉽게 해결해 주는 것이다.
나는 그 전시회를 보고 나서 우리가 흔히 착한 사람들을 지칭할 때 '천사표'라던가 '
날개 없는 천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힘들고 각박한 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우리는 의외로 착한 사람들을 만나 위로받기도 하고
새로 기운을 얻기도 한다. 또 그들의 착한 마음씨에 감응되어 자신 안에 잠재해 있던 천사적인
속성을 재발견하고 시너지의 효과를 얻기도 한다. 우리는 또 한 인간이 천사만큼
완전하게 착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에게서 천사의 속성을 파편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경우를 흔히 경험하게 된다. 지구상에 살아 왔던, 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의 마음속 어디엔가 반드시 있을 천사적 속성의 편린을 예술가들은 용케도
골라 모아서 형상화 한 것이 바로 천사의 그림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착한 사람이
천사의 속성을 가진 것이라기 보다는 천사가 바로 사람의 착한 속성을 응집해서 만들어
놓은 모습이라는 말이다.
일상생활이 비교적 단순했던 중세 사람들이 천사에게 그렇게도 여러가지 역할을 부여하고
기대했으니 요즈음 같이 복잡한 세상에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많은 구석에서 천사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인가. 따라서 우리 각자가 작은 천사의 역할을 할 기회가 얼마나
많아졌는가. 적극적으로 남을 일깨워 주고 도와주고 위로하는 일은 물론이지만
단순히 있음으로써 마음 든든하게 의지할 수 있게 해주거나 그냥 즐겁게 같이 놀아 주는
것까지, 더욱 나아가서는 각자가 올바르게 자기일을 함으로써 서로 믿고 안심시켜
주는 일까지도 말이다. 우리에게 흐믓한 미소를 떠올리는 모든 인간 행위를 각자가 가진
천사적 편린의 작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신과 모든 사람을 천사로 승격시켜도
무방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