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인은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고는 자연을 접하고 사귈 기회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또 도시생활의 매마르고 각박한 환경에서 범죄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람들이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황폐화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은 심리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늘 하는 말이 되었다.

나는 별로 어질지도 현명하지도 못하지만 내가 서울을 사랑하게 된 제일 큰 이유가 서울이 내가 본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그래도 쉽게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산봉우리들, 조금만 높은데에 올라가면 내려다 보이는 거대한 한강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깨닫게 되고서부터이다. 산좋고 물좋은 곳이 어디 있겠느냐는 옛말도 있지만 서울이야 말로 그 쉽지 않은 산좋고 물좋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이다.

우리나라같이 국토가 좁고 산이 많은 지형에서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최대로 즐길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고 건강한 운동이 그냥 아무 산에 가서 걸으며 나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등산이라는 거창한 말을 쓸 필요도 없이 각자의 체력과 시간에 마춰 골라잡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산길이 서울안에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은 너무도 큰 축복이다.

새 봄의 숲은 충만한 생명의 경이를 느끼게 한다. 아직 움이 트지 않은 나무들까지도 온몸 가득히 활력을 저장하고 곧 경주를 시작하려는 선수들같이 팽팽한 건강미를 자랑한다. 대견한 나무들의 튼실한 둥치는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그 맥박의 소리를 느끼고 싶게 한다. 지난해의 작업을 완수하고 자연의 스케줄이 허용하는 적절한 기간을 겉으로는 쉬는 듯이 조용하게 그러나 착실하게 내실을 다지며 새로운 작업을 계획한 나무들. 봄이 되면 그들은 청정하고 의연하게 완전히 '준비된 상태'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裸木의 아름다움이 극치에 달하는 시기가 바로 초봄의 며칠간인 듯 하다.

그런데 봄에 산에 가서 나무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나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같은 종류의 나무들도 인간들 처럼 그 행태가 다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지난 해의 고엽을 완전히 떨구고 새싹, 새잎새들이 들어올 자리를 청소라도 한듯이 깨끗하게 내어주는데 바로 그 옆의 어떤 나무는 아직도 말라 빠진 갈색 잎새들을 잔뜩 틀켜쥐고 추접스럽게 서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버터보아야 며칠 후면 새싹의 솟구치는 생명력에 도리없이 밀려 떨어지는 것이 뻔한 일인데도 마지막 순간까지 매달려서 놓지 않으려는 그 모습이 처절하기까지 하였다.

우리가 이해 못하는 그 나무만이 가진 자연의 속성때문일까, 혹은 인간사회에서도 과히 낫설지 않은 단순한 노욕과 노탐,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어지는 노추와 같은 현상일까. 나의 제한된 지식이나 상상력으로는 나무의 본심을 알 도리가 없지만 나무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명백하지 않은가. 사회라는 무대에서 물러가야 할 사람들이 그 시기와 태도를 언제, 어떻게 택하느냐에 따라 그 퇴장이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