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비슷비슷하게 생긴 기차의 얼굴을 보고 용케도 이름을 알아마출 뿐아니라 항상 구별을 못하는 나를 너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기차가 헨리라고 하길래 그 이유를 묻자 "헨리는 내가 쳐다보기만 하면 나를 보고 웃어요" 하는 것이었다.

세상 일과 아무 이해 상관도 없는 아이도 웃는 얼굴하나로 온 마음을 내준다. 그런데 우리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전세계에 팔아야 하는 이 서비스산업시대에서 미소는커녕 사납게 골이 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연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승산이 있을 것인가?

농본주의 사회로 수천년을 살아온 우리 민족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고 웃으며 애교를 부릴 이유가 없었다. 충직하게 하늘의 햇볕과 단비를 마음 속으로 감사하며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흙을 갈고 작물을 돌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또 대가족 안에서 모두가 가족이니 특별히 사랑이나 감사의 속마음을 내놓고 표현하는 것은 사위스럽고 낯뜨거운 짓으로 생각했다. 식구끼리 서로 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니까.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남남이 서로 얼굴 맞대고 해야 하는 일이 너무도 많을 뿐 아니라 온갖 미디어의 시청각적인 요술에 걸리면 인간의 속마음이 아무리 착하고 진국이라도 무표정, 무관심의 얼굴은 무성의나 무책임으로 의미해석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사면초가의 곤경에 몰려 있어도 언제나 TV화면에서는 자신만만하고 천진한 미소와 여유있는 제스춰를 보였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보통때도 언제나 권위적인 굳은 표정이나 뭐가 잔뜩 못마땅한 듯한 성난 얼굴을 국민에게 보인다. 게다가 정치판에서 늘 있기 마련인 의견차이가 생길때마다 목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를 높여 악을 쓰며 얼굴표정에서 독기를 뿜어내는데에는 여야의 구별이나 인격의 차이가 없는 듯하다. 정말 인간적인 신뢰는커녕 꼴이 보기 싫어서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TV를 끄지 않을 수가 없다.

고객봉사를 직업으로 하는 은행, 관공서, 요식업소, 병원, 상점등에서도 친절한 말씨나 미소는 만나기 어렵다. 외국관광객의 의견조사에서 언제나 불만요인의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불친절과 무성의는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다 골이 나 있는 것 같아서 말을 부칠 수 없었다는 한 외국인에게 다시 한국을 찾을 것이냐는 질문에서 예의있는 말을 쓰면서도 다시는 올 마음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외국기업 유치나 관광사업 육성은 정부의 구호나 한두번의 친절캠페인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다. 또 백화점 점원이 연습하는 구십도 각도의 절이나 공무원이 거울보면서 교육받는 억지미소로 친절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말 한마듸로 천량빗을 갚는다'라거나 '웃는 낯에 침뱉으랴' 같은 우리의 속담도 있는 것을 보면 일상생활에서 하는 말 한마듸나 얼굴표정만으로도 많은 일을 좋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닌듯하다. 다만 어려서부터 기본 예의 교육으로 부드러운 말씨와 행동이 대인관계에서 얼마나 서로에게 이득을 주고 기분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를 일상생활에서 잘 배우지 못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미소는 전염한다'는 서양 속담처럼 누구나 자기 자신부터 얼굴을 펴고 부드러운 표정과 말씨로 미소를 퍼뜨린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살기 괜찮은 곳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