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란에서 알만한 사람의 이름이 진한 글씨로 눈에 띄이면 우선 가슴이 철렁한다. '언제 이 사람이?' 하고 보면 그 뒤에 작은 글씨로 부친상, 모친상, 상배 등의 설명이 따른다.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사회적으로 꽤 알려져 있거나 아니면 현직에서 활발하게 일을 하던 분이 아니면 대개 돌아가신 장본인은 이름 석자도 나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여자들이란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름을 쓸 일이 없는 것이다.

물론 전국을 다루는 일간지에서 보통 사람들의 사망을 기사화 할 수 없겠지만 지방신문에서조차 부고란의 형식은 별로 다르지 않다. 부고란에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우이며 살아 남은 사람들의 마지막 예의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부고를 어떻게 적을 것인가? 우선 돌아가신 분의 이름 석자와 연령, 현직이나 과거의 직업,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나, 유가족, 장례절차와 연락처. 두줄이나 석줄의 지면이면 충분하고 무엇보다도 최소한의 완전한 정보가 되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상주'라는 표현이 우리의 장례문화를 대변하는 것 같다. 물론 돌아가신 분이야 상주가 어떻게 하던 그야말로 속수무책이겠지만 장례식을 돌아 가신 분 위주가 아닌, 상을 당한 유가족과 그 친지들의 행사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좀 야박스럽고 속세적인 감이 드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미국 신문에 나오는 부고란의 기사는 사뭇 다르다. 보통 현실적이고 실리적이라고 생각되는 미국사람들이 이 면에서는 오히려 돌아가신 분들에게 정중하고 예의있게 생의 마지막 예우를 다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특히 소규모의 지방신문에서는 돌아 가신 분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준다. 어디 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고 언제, 어디서, 무슨병으로 (어떻게) 돌아 가셨나를 적은 후에 유가족 사항과 장례식 안내가 따른다. 특히 유가족의 이름을 적을 때 배우자나 자식, '누구 누구를 통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라는 표현 (Survived by...)을 쓰는 것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또 사람에 따라 친지들의 덕담과 추억을 보태 한 시대의 지역사회에서 하나의 구성원의 삶의 편린을 기록한다.

근래에 미국신문의 부고란에서 나는 많은 사회변화를 눈으로 보는 것이다. 첫째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실로 길어졌다는 것이다. 한 10년전에 비해 90을 넘기고 돌아가시는 분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 100살 가까히 또는 그 넘어까지 사시는 분들도 많아졌다. 둘째로 70을 전후로 요절(?)하는 사람들의 사인은 암과 교통사고가 가장 많은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이때에 인간의학이 암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이 시대의 사람들은 누구나 끔찍이도 돌아 다닌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셋째로 노인요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다가 돌아가시는 분들의 수가 부쩍 많아졌다는 사실과 유가족의 언급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우선 결혼이나 가족제도가 많이 해이해졌다는 증거이다. 또 한 백년을 살면 자식들도 이미 80이 가까울테니 어느 다른 양로원에 있어 부모의 장례식에도 못오거나 또는 먼저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미국에서도 장수가 축복이 되는 경우는 별로 흔치 않은 듯하다.

신문에 활자화되는 모든 내용은 한 시대의 기록이다. 기사나 보도자료는 물론이지만 각종광고나 알림까지도 그 시대, 그 사회의 단면을 알려 주는 의미있는 정보가 되는 것이다. 외국인인 내가 미국 지방신문에서 나와는 상관도 없는 광고면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부고란을 흥미있게 읽는 것이 그 때문이다. 다른나라의 사회상이나 그곳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보고 우리사회나 나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비추어 볼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