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 와서 신문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개인의 유산에 관한 기사를 보면 참으로 우리나라가 부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 같이 가난했던 30여년 전에는 생각치도 못한 여러 가지 일이 많이 보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유산에 관한 기사는 대개 두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첫째가 숫적으로 많은 재벌가의 얘기들이다. 유산상속 과정에서의 변칙이나 탈세에 관한 것이나 아니면 그 엄청난 유산을 가지고 형제간에 또는 모자간에 법정투쟁을 불사하는 추악한 모습에 관한 것이다. 세금을 다 내고도 보통사람들이 상상하기에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남는데도, 또 우애있게 감사한 마음으로 나누워 가져도 공짜로 생긴 돈인데, 그걸 마다하고 범법자가 되고 집안이 콩가루가 되는 망신을 당한다.

두번째의 경우는 드물기는 해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미담들이다. 천신만고 끝에 자수 성가 하고 일생동안 혹독하게 근검절약하며 살던 사람이 상당한 유산을 사회의 뜻있는 일을 위해 또는 자신보다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내놓는 것이다. 자식들이 있어도 미련 없이 대의를 위해 쾌척하는 독지가들의 얘기이다. 두 경우가 다 보통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도 없고 더우기 실행하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신문에까지 나는 것이리라.

富의 세습은 사회의 불평등, 그에 따른 사회계급의 고착화와 계층간의 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에 모든 현대 국가에서 무거운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있다. 우리 나라 같이 핏줄이나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제치고 사회기관에 재산을 헌납하고도 자식들에게서 사랑과 존경을 받으려면 자식들을 처음부터 올바로 가르치고 교육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나라의 사회분위기에서는 애초에 자식들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 질 생각도 안하지만 또 부모의 재산을 자기 것이라고도 생각치 않는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흔히 듣게 되는 부모의 퇴직금을 졸라내어 사업하다 날린 자식의 얘기나 재산이 샐까봐 상배한 부모의 재혼을 반대하는 자식들의 얘기는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대신 많은 보통사람들이 얼마되지 않은 유산을 사회의 공익사업이나 자신이 좋아하던 일에 기부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로 되어있다. 그만큼 기부문화가 보편화 되어 있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지 않기'를 주장하는 지성인들의 움직임이 조용히 전파되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자식을 열심히 키우고 원없이 공부시켜 사회인으로 독립시키는 것으로 부모의 책임은 다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물질적 혜택은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아주 그럴듯한 분의 얘기를 들었다. 어느 자수성가를 하신 재산가가 돌아가시면서 모든 재산을 공익사업기관에 기탁하시고 그중 아주 작은 일부만을 세자식들의 '우애기금'이라는 공동관리 유산으로 남기셨다. 그 기금은 형제들이 다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같이 갈 때 같은 가족들의 특별행사에만 쓰도록 해 놓으신 것이다. 이미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라 가정을 이룬 세 자식들은 그 기금 때문에라도 더욱 자주 만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촌들은 친형제같이 가까워져서 아주 화목한 대가족을 이룬 사람들의 얘기였다.

우리사회에서 부족한 공익사상의 실천과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 양쪽을 두루 살린 지혜로운 처사라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