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에 '해동에 보살이 사는 金剛山이 있다'고 적혀 있는데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이름부터가 신비감을 불러 일으킨다. 영어로도 'Diamond Mountain'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가장 빛나고 값비싼 보석과 일치시킨다. 그뿐이랴? 계절에 따라 봄에는 원래 이름으로 금강산, 녹음이 계곡과 봉우리를 뒤덮는 여름에는 蓬萊山, 단풍이 찬란하게 불타는 가을에는 楓嶽山, 그리고 겨울에 모든 치장을 벗어던진 본연의 골격미만을 보여줄 때는 皆骨山이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산. 누구라도 일생에 꼭 한 번은 가서 조물주의 조화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민족의 성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갈 수 있게 된 것이 거의 일년이 되어간다. 실향민을 비롯해 수 많은 사람들이 다녀 왔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그곳은 갈 수 없는 곳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굴욕적인 조건을 감수하고 아직까지는 막대한 경제적인 손실을 떠안으며 금강산 관광을 주선하고 있는 재벌회사의 긴 안목이나 큰 뜻의 속셈(?)을 나같은 사람이 물론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에 다녀온 사람들이 겪은 크고 작은 불유쾌한 사건들을 생각하면 어이없이 등진 고향을 정말로 죽기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한번 보기 전에는 눈을 감지 못하겠다는 나이 드신 실향민이 아니고야 갈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반나절이면 서울에서 아름다운 드라이브길로 갈 수 있는 거리를 밤배를 타고 하루이상을 걸려 수백명이 와글와글 같이 가야하는 것, 내돈 써가며 구경가면서 잔뜩 주눅들려서 북한 관리들의 보기 싫은 꼴을 봐야 하는 것, 그 기가 막힌 절경의 산길을 가축떼처럼 몰이를 당하며 걸어야 하는 것, 무엇보다도 치욕적인 것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계속 감시당해야 한다는 것, 더구나 겁나는 것은 우리가 지불하는 막대한 돈이 우리를 향해 언제 날라 올지도 모르는 포탄이나 무기를 구입하는 데 쓰일지도 모른다는 끔직한 생각을 하면 차라리 그곳은 아직 못가는 곳이거니 하고 마음속으로 그리움을 키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는 산을 무척 좋아한다. 특히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나라에 애착이 더해가는 것이 끈끈한 민족애나 가슴에서 우러나는 애국심에서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수려한 자연풍광, 그야말로 錦繡江山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우리국토의 아름다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큰 산, 작은 산 할 것 없이 우리나라의 산은 모두가 아름답다. 게다가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각각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어디 금강산 뿐일까?

그런데 나는 산에 가는 일에는 좀 까다롭다. 아무나하고 몰려가서 왁자지껄 떠들며 놀러가는 것은 딱 질색이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말이 필요없이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같이 갈 수 있을때가 아니면 차라리 혼자서 가는 편을 택한다.

모든 생물의 동등하고 귀한 생명권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 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하느님의 초대인가? 듬직하고 늠늠한 거목으로부터 밥풀보다 작고 오묘한, 예쁜 풀꽃들이 사는 방법을 눈여겨 보고, 작은 풀벌레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언제나 어떤 의미를 깨우치게 된다. 자연과의 교감에서 삶의 지혜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평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산에 가는 것이 종교 의식만큼이나 내면적이며 私的인 행위이다. 그래서 나는 어정쩡한 마음으로 금강산을 만난다는 것은 聖山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