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나 야채, 과일이 제철이 없이 판을 치는 요즈음 세상에 '동지섣달의 꽃이란 조금도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꽃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줄 수 있는 기쁨을 감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속에서 그 일부로 살던 인간이 문명의 발달에 따라 자연을 떠나 인공의 틀인 도시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향수는 언제나 우리를 떠나지 않으므로 도시안에서도 될 수 있는대로 나무나 꽃을 길러 자연을 끌어드리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개인의 주거환경에서도 옛날의 단독주택에서는 아무리 손바닥만한 앞뜰, 뒷뜰에라도 여러가지 화초를 심어 기후가 허락하는 한 철에따라 마당을 장식하고 방안에까지 드려 놓아 자연을 항상 신변 가까이 두고 살았다. 요즈음에는 궁여지책으로 아파트의 베란다에다가 화분을 놓고 꽃을 보아야 하는데 마당의 꽃밭과는 달리 사철 꽃을 볼 수 있다는 잇점이 있기는 하다.

꽃이란 인간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데에는 가장 적절한 매체이다. 인간 생활의 경조사에는 물론이지만 개인적으로도 꽃을 주고 받는 마음은 깨끗하고 순수하다. 특정 용도가 있는 선물을 받을 때는 주는 사람의 의도가 선물에 포함되지만 꽃이야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와 그것에서 오는 기쁨 자체를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못 마땅한 사람이라도 한다발의 꽃을 건내 주는 손만은 고맙지 않을 수 없고 또 내가 내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꽃을 사거나 키우는 일은 언제나 즐거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꽃의 아름다움은 그 생명에서 오는 것이다. 꽃은 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결실로 연결되는 생명의 단계이다. 이는 생물의 속성중 가장 강한 종족보존본능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렇게도 온 정성을 다 드려서 피는 것이고 그 정성의 힘이 모든 꽃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내가 한창 꽃다운 나이에는 화려하고 잘난 꽃들을 사랑했다. 벨벳같이 두꺼운 꽃잎에 물방울조차 튀겨버리는 고상하다 못해 오만하기까지한 흰장미나 노랑장미의 반쯤 핀 꽃다발을 받을 때 제일 행복했다. 꽃이란 아름답기로 되어 있는 것이니까 아름다울 수록, 화려할 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조금이라도 시들거나 쳐진 꽃은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쳐박았다. 보기 싫은 꽃은 꽃이 아니니까.

나이를 먹어 철이 들어 가면서, 특히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우리는 비로서 생명의 의미와 그 소중함을 조금씩이나마 알게 되고 우리 주의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새로이 배우게 된다.

언제 부터인가 화려하게 이름있는 꽃보다는 그냥 수수해서 자칫 밟혀버릴 잡초꽃, 어느 구석에 쳐박혀서 숨어 피는 듯한 정교한 야생화의 순진한 아름다움이 절실하게 내 가슴에 와닿기 시작한 것이다. 꽃의 표면적인 외양이나 향기에 끌리기보다는 꽃의 의미, 즉 각자의 생명에 대한 소임을 다하려는 노력을 드려다 보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니 꽃 봉우리의 솟아 오르는 힘이나 또 단계적으로 피어나는 꽃이 가진 성장의 아름다움과 화려한 클라이막스, 제 할일을 다 한 쇠잔한 꽃의 피곤한 가련미가 다 다른 아름다움으로 보이는 것이다.

요즈음에 와서 나는 꽃병의 물을 갈아 주는 시간이 자꾸 길어지고 있다. 전 같으면 한꺼번에 버리던 시든 꽃들을 하나 하나 고르고 시든 상태에 따라 지저분해진 꽃잎을 떼어내고 다듬어 가며 마지막까지 보아주고 싶기 때문이다.

'어머니, 요새는 왜 시든 꽃들을 얼른 얼른 버리지 않으세요?' 아이가 이상하다는듯이 묻는다.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 아직도 어린 그 아이가 떨어진 꽃잎의 의미를 어찌 알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