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회와 수연이의 결혼을 축복하며 다음의 편지를 각각에게 보냈다.

사랑하는 큰 아들 한회에게

네가 갑자기 결혼을 서둘러 하겠다는 결심을 통고해 왔을 때 나는 참으로 어이없고 기가 막혔던 것이 사실이었다. 너로서는 갑자기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네가 10월에 가면서도 내년까지는 우리가 서로 많은 생각을 하기로 합의를 본 것으로 나는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의 잠 못이루는 밤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낮을 보내면서 내가 아직까지 너를 내품에서 완전히 떠나 보내지 못하고 붙잡고 있었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결국 자식이란 이렇게 부모를 떠나는 것이고 떠날 때는 정을 떼는 절차가 부모에게는 서운함과 아픔으로 느껴지게 마련인 것인가 보다.

남의 얘기를 할 때는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논리를 따질 수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일에는 논리와 마음 돌아가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약점인가 보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고 너의 판단과 결정을 믿고 네가 원하는 일을 축복하여 주어 네가 행복해 지는 것이 나에게는 이제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의 행복한 일생과 우리의 원만한 모자 관계가 한길에 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인간이 나이 30이면 완전히 성인으로 자신의 일생의 결정을 스스로 책임있게 할 수 있는 때이다. 네가 이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책임있는 가장의 위치에서 너의 가족을 보살피고 올바로 교육시키면서 집안의 전통이나 생활철학을 이어 나가야 할 짐을 기꺼이 짊어지겠다는 결심을 한 것을 의미한다. 네가 심성이 착한 사람이니 훌륭한 가장이 되어 모든 가족관계를 잘 다스려 가리라 믿지만 그래도 나와 새로 오는 식구와의 관계는 많은 부분이 너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수연이와의 관계뿐아니라 너희에게 태어날 아이들과의 관계까지도 말이다.

너의 아버지가 할머니께 어떤 아들이었나를 너는 생활에서 보고 자랐고 나도 할머니가 어떤 시어머니셨나를 지금도 살아 가면서 다시금 엄숙하게 배우고 있단다. 우리가 그렇게 훌륭한 모자관계를, 고부관계를 보고 배운 사람들이 아니겠니. 그것은 다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산 교훈으로 우리는 정말로 남달리 복이 많아서 그런 좋은 교육을 그냥 살면서 힘들이지 않고 배울 기회를 받은 것이란다. 그러므로 너에게는 다른 당부가 필요 없고 나 또한 다른 새로운 결심이나 각오가 필요 없는 듯하다. 그저 할머니와 아버지를 정성껏 따라 하기만 하면 되지 않겠니. 그러면 새식구들은 저절로 배우게 되겠지.

나는 식구 많은 전세대의 가정에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기쁨과 동시에 부담이었던 어려운 시대에 자랐다. 그 시대에는 자식을 키우는 것이 부모의 희생없이는 불가능했고 그것이 또 자식들에게는 심리적인 부담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들면서 또 내가 너의 둘을 키우면서 우리 부모를 더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단다. 지금 시대에서 우리가 너희 둘을 키운 것은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을 얻은 것이지 전 세대의 부모같은 자기희생이나 부담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 기쁨의 값을 제대로 치루지도 않고 거저 얻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져 들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아이들이 모두 너희 둘 같은 기쁨을 주지는 못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너희들이 고마운 것이지.

아버지께서 갑자기 떠나신 후 제일 내가 걱정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나혼자 너희들을 어떻게 올바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너는 나에게 정말로 큰힘이 되어 주었고 어린 승회에게 훌륭한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었다. 우리 가정이 이만큼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면서 지난 10년 모두 성장한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일깨워 주고 또 배움의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 관계는 유지되면서 새식구들에게까지 확대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린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큰 아들인 너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너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우리가 어리고 미숙한 부모였는지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항상 들었다. 너와는 우리가 같이 자랐고 너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할수 있겠지. 또 너는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젊음으로 아름다웠던 우리의 한 시대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승회와는 다른 것이다. 한 부모의 자식이라도 그 관계가 다 다른 법이고 우리집에서는 너와 승회가 우리와 맺은 인연이 많이 다르지만 각 각 그대로 특성이 있게 좋은 관계가 되었음을 감사한다. 너희 둘의 우애는 무엇과도 바꾸어서는 안되는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줄 필요조차 없을 줄 믿는다.

자식도 품안에 있을 때만 자식이라는 옛말을 늘 옳다고 생각하면서 품안을 떠나는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가 마음 정리를 제 때 못하는 모양이다. 너희들이 물리적으로 집을 떠난 것이 벌써 여러 해가 지났건만 그것이 내 품을 떠났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지. 이제 너는 너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므로 이번이야말로 어미 품을 떠나는 자식이 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작년 여름 내가 피츠버그에서 너와 단둘이 사흘을 오붓하게 지냈던 것이 품안의 자식으로서의 너와 가졌던 마지막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같이 다니며 많은 얘기를 나누고 또 Falling Water까지 드라이브를 갔다 오고 밤에는 Columbus Height에서 강가의 아름다운 야경을 내려다 보며 산보를 했지. 새벽까지 얘기하다가 조금 자고 아침 일찍 Ritter's 팬 케익집에 가서 맛 있는 아침을 먹고 Monroevill Mall을 돌아 다니고... 그 때 일이 더욱 선명하게 생각나는구나. 이것이 바로 자식이 성장하여 독립하는 과정의 순리임을 기쁘게 받아 드리고 네가 순조롭게 어른이 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버지가 가신후 너와 나 그리고 승회, 우리 셋이서는 정말 더욱 강한 유대안에서 살아 왔다. 비록 몸은 지구의 끝에서 끝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언제나 같이 있었고 또 만나서 같이 보내게 된 시간들의 귀하고 아름다운 추억은 우리 모두의 정신적인 보물이다. 특히 셋이서 만리포, 용평, 속리산에 갔었던 때, 또 록키산맥 지방이나 남부지방을 여행하던 때의 즐거웠던 여러가지 일들이 어찌 단순한 과거의 일이겠니. 그런 특별한 계기에 쌓여진 우리간의 사랑의 두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니. 모두 다 잘 간직하여 어려울 때 힘을 얻는 활력소로 만들자꾸나.

우리 큰 아들 한회야, 너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한다. 너희 두사람이 서로를 원하여 맺어진 아름다운 인연을 우리 모두의 축원과 정성으로 더욱 아름답게 만들자. 너의 행복이 우리 식구 모두의 행복이고 평화이기에 이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며 노력하자.

너의 결혼을 앞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머니가 1993년 11월 21일 쓴다.

우리 새 식구 수연에게

수연이를 우리 집의 새 식구로 맞아 드리게 된 것을 우선 경사스럽게 생각하고 너를 따뜻하게 맞이 하려고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단다. 또 네가 편지에 말했듯이 모든 것을 열심히 배우고 진정한 한 집안 식구가 되겠다는 마음씨와 태도에 대해 아주 고맙게 생각한단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문화배경이 같고 생활환경이 비슷한 두 가정의 자녀라 해도 두 사람의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란다. 그것은 누구나 사람은 자기 혼자 생긴 것이 아니고 부모 형제와 다른 식구들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 남녀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서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경우에 당사자간에 끌리는 힘은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지만 그 외의 식구들과의 원만한 관계나 우호적인 감정은 오직 상호간의 의도적인 노력과 정성스러운 실천이 없이는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가 많은 일에서 자제와 양보,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제 너희들이 서로가 서로를 택하였다는 사실은 서로의 가족에게 대한 의무나 원만한 관계를 위한 책임도 같이 택한 것이므로 그만한 각오는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십년동안 우리 두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릴 때마다 빼놓지 않고 어디에서인가 자라고 있을 그들의 배우자들을 위해 간곡하게 기도를 했지. 물론 누구인지도 모르는 불특정의 대상을 두고. 이제 나의 많은 기도가 너를 위하여 바쳐진 것을 알게 되었고 또 나의 겸허한 기도의 응답인 네가 내가 바라던대로 착하고 건강하고 반듯한 아이라고 믿고 있다. 무엇보다도 네가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사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성실한 마음가짐과 알뜰한 생활태도를 확인 했다는 내 아들의 안목을 믿고 마음을 놓기로 했단다.

사람이란 자기가 모르는 타인을 처음 만나게 되면 누구나 조심스럽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보통 일상의 사회적인 관계가 아니고 식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조심스럽고 불안하여 겁이 나는 것은 아랫 사람이나 윗 사람이나 다 똑같은 것이다. 너는 적어도 우리 애를 통해서 우리집의 얘기나 나에게 관한 얘기를 많이 들었겠지만 나는 너를 인간적으로 사귀어 볼 기회는 물론 너의 부모님이나 너의 성장환경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전혀 없구나. 그러나 내 아들이 너를 평생의 반려자로 선택하였다는 사실 하나로 그의 판단력을 믿기 때문에 너를 나의 귀한 자식으로 받아 드릴 결심을 했고 우리의 인연을 더욱 소중하게 시작하고 싶기에 여러 날 동안 너를 많이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이 편지를 쓰기로 했단다.

너희 두사람은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성인이고 또 사랑으로 택한 사이이므로 너희 둘간의 지켜야 할 도리나 생활방식에 대해서는 내가 간여하고 여러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우리집에 들어 와서 생기게 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얘기하려고 한다. 너를 우리 식구로 맞아 드리기 전에 나와도 만남의 시간을 좀 갖고 네가 우리 집안에 대해 익숙해지고 또 다른 식구들과도 친숙해 질 기회가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사정이 여의치 못하구나.

또 결혼 후에도 당분간 떨어져 살아야 하니 긴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집안얘기나 또 내가 너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몇가지를 적어서 너에게 전하고 싶단다.

어느 가정이나 그 집만의 독특한 가치관이 있고 그 것에 따르는 집안 분위기가 있기 마련이지. 우리집도 이런 면에서 다른 어느 가정과도 많이 다르며 그 것을 네가 이해하고 그 안에서 편하게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공부가 끝나 돌아 와서 우리가 가까이 살게 될 때까지의 시간적 여유가 오히려 너와 나 서로에게 많은 생각을 하며 이해의 폭을 넓힐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 집안은 일찌기 개화된 집안이다. 나의 할아버지 세대에 이미 외국여행을 하셨고 최고학부의 교육을 받으셨으니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먼저 신식 문물을 받아 드린 집안일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자연히 생겨나는 지성의 존중, 인격의 평등사상, 개방적인 사고방식은 참으로 우리집안의 자랑스러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우리집에서는 누구든지, 언제든지, 누구에게서든지, 무엇이나 좋은 것은 배운다. 물론 우리 집의 어른들은 다 공부를 하신 분들이니 어린 사람들이 어른들게 배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른들도 어린 사람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으면 언제나 배우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또 남녀의 차별이나 아들 딸의 구별은 아예 없이 상호간의 인격을 존중한다. 그것은 남자는 가장으로서 여자는 주부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그 역활에 대해 동등하게 존중하면서 서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우리집안은 공익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단다. 돌아가신 시아버님께서 어떤 공직자셨다는 사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네가 그 분을 인격적으로 직접 대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유감이다. 그러나 두분 수녀님을 비롯하여 주위의 여러 어른들이 공익적인 전문직에 종사하고 계신 것을 보면 우리 집안의 전통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도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하건 이러한 집안의 전통을 이어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남다른 특권과 혜택을 누린 것이므로 당연히 그 댓가를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그것이 배운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사회적인 책임이란다. 이러한 공익적인 가치관 때문에 우리집에서는 물질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하며 허례나 허식은 일체 없다. 우리 아이들이 유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우리생활이 아주 어렵거나 내가 아이들에게 너무 돈을 아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의 생활방식은 우리 집안의 젊은이들이 근검절약하는 정신을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존중한다. 검소한 생활에서 품위를 지키며 뜻있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교육정신이란다.

셋째, 우리 식구들은 감성이 풍부하고 솔직한 사람들이다. 이는 우리가 참을성이 없이 자기가 느끼는대로 아무말이나 하는 자제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분을 잘 알고 가식이 없다는 뜻이다. 나의 시어머님께서는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셨다. 나는 지금도 그 분을 생각하면 옷깃을 다시 여미게 된단다. 그 분은 絶對善의 표상과도 같으신 분으로 현명하고 냉철하신 사리와 부드럽고 따뜻하신 인정을 동시에 지니셨던 분이다. 나는 시어머니께서 일상 생활에서 보여 주신 교훈을 지금도 새로이 깨닫는 일이 종종 있단다. 그런 할머니의 인격과 사랑이 우리 두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귀중한 영향을 주신 것을 항상 감사하게 된다. 나는 그런 시어머니가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 분의 본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따르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다.

나는 그 분을 먼저 한 인간으로 존경하고 사랑했고 또 며누리로서 고부간의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고부관계를 모녀간 같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종류의 인간관계를 갖게 되며 그 관계에서 각자가 해야 하는 각 각 다른 역활이 있는 것이란다.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은 고부간이 그 만큼 가깝다는 좋은 의미이겠지만 다른 면으로 생각하면 우리사회에 통념적으로 깔려있는 '고부관계는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겠니? 나는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는 며느리로서 서로의 위치를 존중하면서 그 본분을 다하면 훌륭한 고부관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 또 고부관계도 인간사회에서 그 자체로서 중요한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좋은 고부관계의 존재를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본성이 착하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 착한 마음을 바탕으로 훌륭한 고부관계를 갖게 되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게 되어 있단다.

우리 옛말에 "제사랑은 제가 끼고 있다"고 한 말은 참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 정이나 사랑은 각자가 할 탓이고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뿌리고 키운만큼 거두기로 되어 있단다. 씨를 뿌리고 싹을 내어 키우는 데에 정성을 다 하면 어찌 그 수확이 좋지 않을 수 있으며 그 밭이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니. 너는 우리집의 큰 며느리로 나 다음에는 집안의 어른이 될 사람이다. 더구나 너의 남편이 될 큰애는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은 형이므로 너도 장래에 생길 손 아래 동서에게 형이 동생에게 지금까지 해왔듯이 집안의 어른으로 돌보고 베풀고 가르치는 역활을 해야 할 것이다. 형제가 단 둘 뿐이니 각자의 역활이 더 중요하며 더구나 너는 우리 집안의 평화와 우애,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 나가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

시어머니가 새 며느리에게 이런 편지를 쓰는 일 자체가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대로 유식한 시어머니가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거부감이나 불안감을 주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단다. 그러나 너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할 사이이며 서로가 똑같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같이 다짐하고 싶기에 너에게 말로 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점들을 정리해서 쓴것이다. 네가 이러한 점들을 잘 이해해 주고 우리집안의 성원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받아 드리고 앞으로 태어 날 새 세대를 이런 분위기에서 교육하는 것을 값있게 생각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네가 지금까지 너희 부모님들께로부터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다고 믿는다. 네가 받은 좋은 교육을 우리집으로 가지고 와서 또 우리집의 좋은 점과 조화시켜 더욱 향상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니?

이상적인 인간관계란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귐, 섬김, 나눔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란다. 서로 모르던 사람도 그의 인간성을 이해하고 좋은 점을 보고 그대로를 받아드리는 것이 '사귐'이라면 상대방을 위해 먼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하는 정성을 보이는 것이 '섬김'의 시작이란다. 인간관계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귐과 섬김을 먼저 시작하면 '나눔'은 저절로 따라 온단다. 우리집안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관계는 물론 우리의 인격의 표현으로 중요성을 갖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내 아들에게 가진 사랑과 네가 네 남편에게 가진 사랑이 한길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니.

너희 둘의 결혼을 가슴 가득히 축복하며 다시 한번 너를 우리집의 새 식구로 따뜻하게 환영한다. 너와 나의 정성스러운 노력이 우리 집안을 더욱 화목하게 할 것을 꼭 믿는다. 서로 많이 생각하고 많은 기도를 바치도록 하자.

1993년 11월
너희들의 결혼을 앞 두고 어머니가 두손 모아 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