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역시 젊은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기에 요즘 젊은 세대의 내면은 어떤지 늘 궁금해 하면서, 우리가 자라던 시대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매일매일 받고있다. 어떤 때는 내 상상력과 이해의 한계에 부딪치고 교육자로서의 무력함과 좌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신부님의 얘기를 듣고 내가 어려움을 운운하는 것은 실로 사치스러운 불평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조차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평화시에라도 전방의 군인 사회는 항상 인명이 좌우되는 돌발사건이 일어나는 원인이나 상황이 실로 어처구니 없이 사소하고 하찮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조금만 참을성이 있었어도, 조금만 남을 생각하는 배려가 있었어도, 잠깐만 생각을 달리 해볼 수 있는 융통성만 있어도 많은 사고가 방지될 수가 있을텐데 그것이 안되어 그 소중한 젊은 이들의 목숨이, 또는 그 못지 않게 소중한 그들의 인생이 그냥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는 안타까운 일들을 그 분은 매일 접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를테면, 압구정동의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부드러운 커피를 딱 한잔 마시고 싶어 미칠 지경이어서, 또는 고된 훈련 후 뜨거운 탕물에 푹 잠겨 몸을 풀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탈영을 시도하는 사병, 한 내무반에서 우글우글 몸을 스치고 사는게 싫어서, 또 남의 눈에서, 귀에서 해방되는 순간이 없이 엉켜 사는 것이 너무 신경질이 나서 옆의 친구와 사소한 언쟁 끝에 걷잡을 수 없는 폭력으로 이어져 거의 살인을 하고 영창에 가게 되는 사병, 변심한 애인의 편지를 기다리다가 자살을 기도하는 사병, 이 정도는 아니라도 신부를 찾아와서 밑도 끝도 없이 삶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무력감에 시달려 눈물을 줄줄 흘리는 사병...

신부님이 예는 끝이 없었다.

10-20년전에 군대생활을 해본 사람들로서는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 시절의 사병들은 요즈음에는 영화나 소설에나 나옴직한 상사의 정신적, 육체적 잔혹행위나 툭하면 받는 단체기압에 무조건 순응하고 했었다.

또 반찬은 고사하고 언제나 부족한 식사량 때문에 정말로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 죽기 살기로 탈영을 하는 일도 있었다.

늙고 병들고 가난에 찌든 부모님을 봉양하다가 입대한 사병이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알고 자기가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탈영을 시도하다가 잡힌 사연을 가끔 접하고 우리도 얼마나 가슴 아프게 생각했던가.

세상은 그동안 엄청나게 바뀌었다.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아이들이 아니라도 우리의 핵가족제도는 아이들의 지위가 대부분의 가정에서 최상위로 올라 갔고 높아진 생활 수준이나 주거환경도 아이들의 물질적, 공간적 욕구의 충족은 당연한 것으로 되었다. 엄격한 자녀 교육을 주장하는 부모들이 집에서는 못해보는 고생을 좀 시키려고 군대에 보낸다고 한다.

그런데 군대생활도 옛날 수준에서 보면 컨츄리 클럽 생활이다. 식사의 양이나 질은 보통 서민가정의 식사보다 못할 것이 없고 매점에서 간식거리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한다. 샤워, 빨래 등 위생청결도 그 만하면 나쁜게 아니고 부대마다 공중전화로 수시로 식구들과 통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사관이나 장교들의 손찌검이나 단체기압은 옛말이다. 욕을 하고 야단만 쳐도 사병들이 당장 상부에 투서를 하거나 상사를 고발하니 직업하사관이나 장교들의 좌절감 또한 보통일이 아니란다.

물론 젊은 이들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 장본인은 기성세대가 틀림없다. 안락하고 쾌적한 환경만 만들어 주면 아이들은 무조건 잘 자라줄 것으로 믿었던 단순한 구세대의 가치관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너무도 유연한 것으로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도 못 견디게 불행을 느낄 수 있는가 하면 또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견디면서 큰 희열마저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모두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감성지수가 높은 원숙한 인간성은 폭넓은 환경조건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훈련은 느낌의 확대 보다는 오히려 그 감성을 조절하고 감성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결과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의지의 배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