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뭐니해도 이름이 민주국가에 태어난 우리는 그동안
여러번의 선거를 치뤄왔고 여러 선진국의 제대로 된 선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지난 반세기동안 번번히 선거때마다 반복되는
여러 가지 추악하고 어처구니 없는 작태가 이번 선거에서도 또다시 연출되고 있는 것을
보고 듣게 되니 참으로 암담할 뿐이다.
우리 민주주의의 문젯점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민주주의 정치에서 선거는 주인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첫단계의
권리행사이다. 자신이 원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제대로 작용하려면 첫째 국민들의 자신들의 확실한 의사를 주장하려는 주인의식이
있어야 하며 둘째 국민들의 의사를 성실하게 바뜰어 줄 유능한 대표자와 그들의 모임인
정당이 있어야 한다. 이 두가지가 민주주의 실현의 선행요건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책제시나 공약실현의 성실성으로 차별화되지 않는 날라리 정당들, 입후보를 하려면
그나마 패거리를 업는 것이 혼자 뛰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천만은 받으려는 당원들, 그게 안되면 그 길로 박차고 나가 다른 당으로 달려가고
거기서도 안되면 말도 안되는 거창한 핑계를 대고 새로 당을 급조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이다.
국민들이라고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선거권을 환금성의 가치로 생각하고 이후보 저후보,
이 정당 저 정당을 돌며 흥정을 한다. 그것도 하찮은 한 끼의 향응이나 기껏해야
싸구려 관관여행을 두고 말이다. 국가의 앞날이나 지역사회의 발전이 어찌될 것인지는
생각해 본적도 없고 그것이 선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일도 없는 사람들.
혈연, 지연, 학연의 끈에 얽매어 자격이나 능력이 없고 부패한 후보라는 것을 알면서도
뽑는 사람들이 대다수의 우리 국민이다.
이렇게 민주주의 기본 선행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 통에서 장미가 피어나기를 기대하는것'과 같다는 비유를 우리나라 정치현실에
두고 말한 외국의 논객이 오래전에 있어서 우리 모두가 매우 불쾌하고 자존심 상했던
일이 있었다.
뚜렷한 정책노선과 지지기반이 있어 백년이상 같은 이름으로 내려오고, 대를 이어
내려오는 당원들을 가진 몇 개의 주요정당들이 국민의 선택에 따라 때로는 與가 되기도
하고 野가 되기도 하는 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신의 이념과 더 잘 맞는 정당이
있고 입후보자가 있어 기꺼이 선택할 뿐아니라 그 사람이 꼭 선출될수 있도록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힘이 되어 밀어 주는 나라, 그런 나라도 이 지구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 나라에서는 선거는 온국민의 축제가 된다니 그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언제나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희미하나마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민단체들이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평가가 반드시 공정하여 전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공개된 자료에 나타난 사실을 토대로 한 입후보 지망자들의
정치적 자질과 능력, 성실성이나 청렴성 등을 평가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다만 방법에 있어서 외국의 경우에는 시민단체들이 국가를 위한 비젼을 제시하는
후보자를 지지하여 당선시키는 예가 많은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들은 부적격자를
골라내어 아예 입후보를 못하게하거나 또 낙선운동까지 하겠다는 것이 정치현실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선거 때마다 특정 후보가 더 나아서라기보다 덜 나쁘기 때문에 뽑아야 했던 경험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이번에는 아예 아무런 경력이 증명되지 않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무소속의 신참 후보를 뽑아보면 어떨까, 물론 무슨 계획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일단 들어본 다음에 말이다.